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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영 칼럼/11.18] 한국과 일본 청년층의 '분노指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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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8,994회 작성일 2011-11-22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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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부격차 한국보다 심각하고 청년실업률도 비슷하지만 분노하지 않는 일본 젊은이들

학생·시민혁명 성공시켜봤고 평등의식 강한 한국 젊은이들, 행복한 미래 꿈꾸며 불만 표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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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n_img_caption.jpg\" 송희영 논설주간

10월 27일이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당선된 다음 날 일본 와세다 대학생들을 잠시 만났다. \"한국에서는 젊은이들이 들고일어나 수도 서울에서 정권교체를 이뤘다\"고 말을 붙여봤다. 뜻밖의 화제에 자기들끼리 대답을 미루는 듯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이었다. \"\'월가를 점령하라\'는 데모는 일본에서 왜 일어나지 않는가.\" 이렇게 묻자 \"그런 일이 어떻게 일본에서…\"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한국에서는 2040세대의 분노 폭발이 화제지만 일본은 정반대다. \'분노하지 않는 젊은이\'를 두고 전문가들의 이러쿵저러쿵 논쟁이 벌어지고, 분노할 줄 모르는 청년층을 개탄하는 의견도 나온다.



일본이라고 정치권 불신이나 빈부격차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1년마다 바뀌는 총리에 국민들은 진저리치고, 연간 소득 112만엔 이하 계층(중위 소득의 50% 이하를 버는 계층)의 상대적 빈곤율은 2010년 16%로 사상 최고치다. 한국의 상대적 빈곤율 14.9%보다 심각하다. 일본 총리실 조사를 보면 20대 연령층에서 \"고민과 불안을 안고 있다\"고 대답한 비율은 20년 전 40% 수준에서 요즘엔 63.1%까지 치솟았다.



이렇듯 분노 폭발의 기반은 갖춰졌건만 일본에서 일어난 \'점령하라\'는 시위에는 기껏 100여명이 모였다. \"한국 드라마를 그만 방영하라\"는 후지TV 앞 반(反)한류(韓流) 데모에는 수천 명이 모였고, 원자력발전소 폐기 집회에는 젊은 엄마들을 중심으로 5만여명이 시가지를 덮었었다.



일본 청년층을 관찰해온 한 대학교수는 이렇게 분석했다. \"장래에 대한 불안감은 있어도 지금 오늘의 생활에는 불만이 없기 때문이죠.\" 80% 이상의 청년이 부모와 함께 살기 때문에 미국처럼 직장을 잃으면 공원 텐트로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100엔짜리 동전 3개로 한 끼 식사는 해결되고 휴대폰이건 PC건 가져야 할 것은 다 가졌는데 뭐가 부족하겠나.\" 물질적 풍요가 분노 억제에 약발을 발휘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한국 청년들은 부모 슬하에서 쫓겨나 식사를 거르며 살기 때문에 이토록 불만을 참을 수 없는 것일까.



어떤 경제전문가는 청년실업을 들고나왔다. 미국·유럽의 청년실업률도 20~40% 수준이지만 일본은 10% 이하다. 임금근로자 셋 중 한 명이 비정규직이라고 해도 영국처럼 상가에 불을 지르고 미국처럼 은행 점포를 점거할 정도는 아니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청년실업 또한 한국과 일본이 다를 게 없다. 우리 청년층의 공식 실업률은 지난달 6.9%였고, 구직(求職)을 포기한 사람들까지 포함해도 체감 실업률은 11.3%였다.



실업률로도 설명이 안 된다면 두 나라 청년층의 분노지수(指數)가 차이 나는 진짜 이유는 뭘까. 본디 국민성이 다르다고 볼 수도 있다. 한국인은 조그만 불평조차 참지 못하는 성향인 반면 일본인들은 불편한 속마음을 좀체 드러내지 않는다. 일본에선 우리처럼 학생·시민혁명이 성공한 적이 없는 데다, 1960년대~70년대 일부 청년단체의 과격투쟁에 넌더리났던 경험 때문이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만으로 양국 청년층의 분노지수 격차를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일본 전문가들의 진단을 보면 두 가지 차이가 발견된다. 일본 젊은이들은 어릴 때부터 승자(勝者)와 패자(敗者)를 구별하는 교육을 받았고, 노력한 사람과 능력 있는 사람은 그에 걸맞은 보상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능력주의와 성과주의가 은연중 일본 사회에 정착했다는 견해다. 평준화 교육으로 누구든 같은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인식이 강한 한국과는 거리가 있다.



또한 리더십을 갖춘 유능한 일본 젊은이들은 대기업들이 흡수해버린다. 불만계층을 모아 연대(連帶)전선을 꾸릴 만한 주동자급(級) 인재는 대부분 엘리트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는 1980년대에 많은 인재들이 운동권으로 내몰렸던 한국과는 전혀 다르다. 이들은 우리 사회의 아웃사이더로 자리잡은 후 시민단체 같은 조직을 만들고, 이슈를 내걸고, 인터넷·트위터를 통해 불안한 청년들을 단결시키는 중심체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도 한 일본 중견 언론인은 부러움을 감추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선거라는 평화적인 방식으로 젊은 층이 기성(旣成)정치를 심판했잖아요.\" 자기만족에 취해 온순하게 길들여진 일본 청년들보다 훨씬 낫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인간이란 \'앞으로 미래가 더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할 때 현재의 생활에 불만을 갖는다\"는 어느 일본 사회학자의 논리를 소개했다. 한국 청년들은 지금보다 더 행복한 미래를 만들려는 뜨거운 욕구를 견디지 못해 오늘의 불만을 분출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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