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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식 칼럼 11. 8.] 한국교육의 神話가 무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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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7,391회 작성일 2011-11-16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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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식 수석논설위원





심상필 전 홍익대 총장(75)은 1960년부터 10년간 프랑스에서 유학하면서 1968년 5월 일어난 68혁명을 체험했다. 1960년대 초 프랑스 파리에 살고 있던 한국인은 수십 명에 불과했다. 그는 68혁명의 전 과정을 직접 목격한 몇 안 되는 한국인인 셈이다. 그가 얼마 전 펴낸 자서전 ‘다시 찾은 시간’에는 68혁명에 대한 생생한 증언이 담겨 있어 흥미롭다.



프랑스 교육의 몰락 부른 68혁명



68혁명은 파리 근교 낭테르대에서 시작됐다. 이 대학 여대생 기숙사에는 남학생 출입금지 조치가 내려져 있었다. 프리섹스 등 자유로움에 대한 열망을 갖고 있던 학생 142명은 대학 측에 출입을 허용해줄 것을 요구했으나 거부당했다. 이들은 대학본부 점거에 나섰다. 학생들의 대학본부 점거는 프랑스 사회에 일대 사건이었다.



프랑스 국민은 전통적으로 대학교수에 대해 강한 존경심을 갖고 있었다. 수업은 엄숙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학생이 교수와 면담을 하려면 먼저 정중한 편지를 보내 약속을 신청해야 했다. 감히 넘보기 힘들었던 대학 권위의 심장부에 학생들이 멋대로 들이닥친 것이다. 심 전 총장은 ‘수백 년에 걸친 프랑스 대학 역사의 권위가 무너지는 순간’이라고 회고했다.



대학 당국이 학교 폐쇄로 맞서자 학생 300여 명은 파리시내 소르본대로 몰려갔다. 13세기 개교한 이 대학은 프랑스 학문의 본산이었다. 캠퍼스는 고색창연했고 건물 벽에는 유서 깊은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학생들은 빅토르 위고와 파스칼의 동상이 서 있는 이곳을 점거하고 벽화에 칼질로 낙서를 했다. 밤에는 남녀 학생과 부랑자들이 모여 혼숙을 하며 성(性)의 향연을 벌였다. 교육에서 권위는 생명과 다름없다. 프랑스 교육은 치명상을 입었다.



시위는 고교생과 노조가 가세하면서 가열됐다. 시위의 열기는 유럽의 다른 나라로, 미국으로 번져 나갔다. 68혁명은 지금도 ‘학생운동의 전설’로 미화되고 있지만 프랑스 내부에선 평가가 교차한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68혁명이 남긴 폐해 가운데 ‘교육의 권위 추락’을 가장 개탄한다. 68혁명 이후 교수는 물론이고 교사들의 권위도 크게 떨어졌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2007년 프랑스 전국의 교사 85만 명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 교사의 권위 회복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는 편지에서 ‘지난 수십 년 동안 교육의 중심에 지식은 없고 아이들의 인격만 있다’면서 ‘학생들에게 최대한 많은 것을 가르쳐야 하는데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다’고 썼다.
한국도 가선 안 될 길 가고 있다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한국에서도 교육의 권위 상실은 두드러지고 있다. 교사들이 학생에게 폭행을 당하는 일은 이제 충격적인 뉴스가 아니다. 체벌 금지 이후 학생들은 교사들에게 학생 통제 수단이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학생 인권을 내세우며 학교 내에서 집회의 자유까지 주겠다고 한다. 만약 실현된다면 학생들이 교사나 학교 방침에 수시로 항의하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교육의 권위는 더 떨어질 곳도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교사들이 수업 도중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을 헐뜯거나 자신의 정치적 이념을 학생들에게 주입하려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학부모는 물론이고 학생들까지 고발 사이트를 개설하며 반발할 정도다. 일부 교사는 스스로 교육의 권위를 허물고 있다.



감사원이 최근 대학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감사원은 대학들이 수입은 줄여 잡고 지출은 늘려 잡아 등록금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받아 왔다고 대학을 나무랐다. 그러나 감사원은 잘못을 저지른 대학의 명단을 공개하지 않았다. 국민에게는 모든 대학이 거대한 범죄 집단처럼 비칠 수밖에 없다. 마구잡이 감사로 헌법이 보장한 대학의 자율성도 훼손됐다. 궁지에 몰린 대학들은 내년부터 등록금을 5% 내리겠다고 사실상의 ‘항복 선언’을 했지만 대학이 입은 유형무형의 상처는 심각하다.



한국에서 등록금이 비싼 원인은 복합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한국은 정부의 대학 재정지원 비율이 가장 적은 나라다. 상대적으로 등록금 비중이 커질 수밖에 없다. 정신적 영역에 속하는 대학 교육을 일반 공산품과 같은 시각으로 접근하는 일도 바람직하지 않다. 2011년 한국에 거세게 몰아친 등록금 파문은 대학의 권위 추락을 가속화할 것이 분명하다.



프랑스는 경제규모로 세계 5위이지만 대학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올해 영국 대학평가기관 QS가 집계한 ‘세계 대학 순위’에서 프랑스 대학은 세계 200위 이내에 4개의 이름을 올리는 데 그쳤다. 5개 대학을 200위 안에 진입시킨 한국보다도 못했다. 교육은 한번 무너지면 회복이 어려운 법이다. 한국은 광복 이후 폐허 속에서 교육 분야에 남다른 열정을 쏟아 경제발전을 이룩했고 지금까지 국력을 유지해왔다. 최근 교육 분야의 급속한 추락을 보면서 한국 교육의 신화가 무너져 내리는 불길한 징조를 느낀다.



동아일보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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