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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렬 칼럼/10.20] 졸병은 죽어서도 졸병인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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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245회 작성일 2011-10-24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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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미국 대사관과 미군 태평양사령부(PACOM)가 지난주 하와이에서 한국 고위언론인들을 초청해 가진 세미나에 참석했다. 행사기간 중 일행과 함께 1941년 12월 7일 일본군의 진주만 기습공격으로 장병 1177명과 함께 9분여 만에 물속에 가라앉은 전함 애리조나호 선체 위에 세워진 수상 국립묘지를 찾았다. 침몰한 애리조나호 위에는 중앙부를 가로지르는 길이 56m의 흰색 수상 기념 건축물이 서 있다. 기념관 끝 흰색 대리석 벽면에는 전몰장병들의 이름이 해군과 해병대로 나뉘어 새겨져 있었다. 중앙 하단에는 ‘미 해군 전함 애리조나호와 함께 1941년 12월 7일 산화한 용감한 용사들과 그들의 전우들을 기념하여’라는 문구가 보인다. 왼쪽 하단에는 생존해 천수를 다한 퇴역장병들의 이름을 새긴 판이 별도로 있었다.



美국립묘지엔 계급 구별 없어



‘진주만 영웅’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보며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배열이 계급별이 아닌 알파벳순이었다. 퇴역 후에 사망해 새겨진 예비역 장병들 이름 역시 계급 순이 아니라 사망일자 순이었다. 이런 원칙은 미국 워싱턴 DC에 소재한 알링턴 국립묘지를 비롯해 미국 내 120여개 국립묘지에 모두 적용된다고 한다. 계급별 묘역 구별도 없고 장군, 사병 할 것 없이 1인당 4.49㎡(1.36평) 땅에 묻힌다. 다만 장군들의 비석은 조금 더 크고 모양이 다양할 뿐이다. 유일하게 해병대 위병이 지키는 곳은 전직 대통령이나 유명한 장군들의 묘역이 아닌 ‘무명 용사탑’이다. 화려한 명성을 남긴 영웅들보다 이름 없이 산화한 무명용사들이 더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의식이 깊게 깔려 있는 듯하다.



프랑스 파리에서 동남쪽으로 250㎞에 위치한 두메산골 콜롱베 레 드제그리즈. 1970년 11월 어느 날 프랑스 육군 장갑차가 길이 2.2m 참나무 관을 싣고 마을에 도착했고 마을 청년 6명이 운구를 했다. 장례식은 3군 의장대가 예식을 갖추는 가운데 가족과 소수의 사람들만 참석해 간소하게 치러졌고 먼저 간 딸 곁에 안장됐다. 묘석에는 아무런 수사 없이 ‘샤를 드골 1880-1970’이라고만 새겼다. 제2차 세계대전 영웅인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의 장례식과 묘소 풍경이다.



드골은 다음과 같은 유서를 남겼다. “나의 장례식은 아들, 딸, 사위, 며느리가 간단히 치르기 바란다. 국민장을 원하지 않으며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 관료들의 참석을 원하지 않는다. 오직 군대만이 참석할 것이며 어떤 음악, 군악 연주도 하지 마라. 또한 어떤 추도사도 하지 마라. 장례식은 침묵으로 진행하고 나의 가족, 프랑스 해방을 위해 싸운 레지스탕스 동지, 콜롱베 시의회 의원만이 참석하기 바란다.”



국립 대전현충원으로 가 보자. 죽어서도 계급이 존재하는 곳이다. 묘역은 장군, 장교, 사병 묘역으로 나뉜다. 국립묘지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은 ‘대통령을 제외한 사람은 묘역을 3.3㎡(1평)로 제한한다’고 했지만 장군들의 묘역 넓이는 사병의 8배다. 사병은 화장을 해 묻히는 반면 장군들은 매장을 하고 봉분을 만든다.



계급별 묘역은 군사문화잔재



장군, 장교, 사병의 계급은 있을지언정 조국을 위해 헌신한 그들의 애국심과 명예에는 차이가 있을 수 없다. 군대조직에서 장군, 장교 권위는 인정하고 또 인정 받아야 한다. 그것도 살아있을 때 이야기다. 죽어서 입는 수의에 호주머니가 없듯이 죽어서 계급이 존재할 수 없다. 계급에 따라 죽어서까지 묻히는 곳과 묘역의 크기가 달라져야 한다는 것은 ‘군사문화’의 잔재다. 드골 프랑스 전 대통령의 묘역은 검소하다 못해 초라하기까지 하지만 그의 삶은 죽어서 더욱 빛나고 있다. 졸병은 죽어서도 졸병, 장군은 죽어서도 장군인 대한민국 국립묘지의 현실이 서글프다.



이강렬 논설위원 ry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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