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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식 칼럼/10.13] 색깔론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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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7,580회 작성일 2011-10-14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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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식/논설위원



박원순 범야권 서울시장 후보가 \"정부가 북한을 자극해서 (천안함의) 억울한 장병들이 수장됐다\"고 발언한 데 대해 천안함 폭침 책임을 북한이 아니라 대한민국에 돌리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박 후보 측은 \'시대착오적 색깔론\'으로 재반박하고 넘어가려 한다. 지난 9월19일에는 한나라당 의원이 \"검색하기\" href=\"http://search.daum.net/search?w=tot&rtupcoll=NNS&q=%C0%DA%C0%AF%B9%CE%C1%D6%C1%D6%C0%C7&nil_profile=newskwd&nil_id=v20111013140138601\" target=\"new\" class=\"keyword\">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국회의원이 있다면 북한에 가서 하라\"고 발언해 야당 측이 \'신(新)검색하기\" href=\"http://search.daum.net/search?w=tot&rtupcoll=NNS&q=%B8%C5%C4%AB%BD%C3%C1%F2&nil_profile=newskwd&nil_id=v20111013140138601\" target=\"new\" class=\"keyword\">매카시즘\'이라며 반발한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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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론이나 매카시즘, 레드 콤플렉스라는 말은 좌파진영이 우파진영과의 이념논쟁에서 불리한 상황에 처했을 때 단골로 사용하는 방어기제(機制)다. 1917년 검색하기\" href=\"http://search.daum.net/search?w=tot&rtupcoll=NNS&q=%B7%AF%BD%C3%BE%C6%C7%F5%B8%ED&nil_profile=newskwd&nil_id=v20111013140138601\" target=\"new\" class=\"keyword\">러시아혁명이 성공하고, 1949년 중국 대륙이 공산화된 이후 전세계적 이념대결이 본격 시작됐다. 공산진영이 붉은색을 상징색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공산주의를 지칭할 때 \'붉은\'이라는 표현을 앞세우는 경우가 많았다. 분단 및 6·25전쟁을 통해 동서냉전의 첫 각축장이 된 한반도에서는 특히 심했다. \'빨갱이\'라는 말이 일상화하고, 붉은색과 전혀 관련이 없는 유격대(partisan)도 \'검색하기\" href=\"http://search.daum.net/search?w=tot&rtupcoll=NNS&q=%BB%A1%C4%A1%BB%EA&nil_profile=newskwd&nil_id=v20111013140138601\" target=\"new\" class=\"keyword\">빨치산\'으로 불린다.



정치권에서는 5·16 뒤 1963년 제 5대 대선에서 검색하기\" href=\"http://search.daum.net/search?w=tot&rtupcoll=NNS&q=%C0%B1%BA%B8%BC%B1+%C8%C4%BA%B8&nil_profile=newskwd&nil_id=v20111013140138601\" target=\"new\" class=\"keyword\">윤보선 후보검색하기\" href=\"http://search.daum.net/search?w=tot&rtupcoll=NNS&q=%B9%DA%C1%A4%C8%F1&nil_profile=newskwd&nil_id=v20111013140138601\" target=\"new\" class=\"keyword\">박정희 후보의 검색하기\" href=\"http://search.daum.net/search?w=tot&rtupcoll=NNS&q=%BF%A9%BC%F8%B9%DD%B6%F5%BB%E7%B0%C7&nil_profile=newskwd&nil_id=v20111013140138601\" target=\"new\" class=\"keyword\">여순반란사건 연루를 문제삼아 이념공세를 펼치면서 색깔론이 본격화됐다. 1970년에는 상황이 뒤바뀌었다. 김대중(DJ) 신민당 대통령 후보가 예비군 폐지, 대중경제, 북한 및 공산국가와의 관계 개선, 4대국 안전보장론, 사치세 신설을 공약했고, 이에 대해 박정희 후보의 공화당은 용공·친북적 주장이라고 공격했다. 당시 경제력·군사력 모두 북한에 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DJ는 계속 이념 시비에 시달려야 했고, 1997년 공화당 후신인 자민련의 김종필(JP) 총재와 DJP공동정권 형태로 겨우 집권할 수 있었다.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념 대결은 끝났다. 그러나 김정일 정권의 개혁·개방 거부로 한반도는 아직 세계 유일의 냉전 분단지대로 남아 있다. 색깔론이 정치적 선동의 수단이 돼서도 안 되지만, 안보관·국가관을 숨기는 도구가 돼서도 안 된다. 박 후보는 자신이 종북(從北)주의자인지 아닌지 소상히 밝혀야 할 의무가 있다. 박 후보의 과거 발언, 선거캠프에 포함된 명백한 종북주의자 그룹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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