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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식 칼럼/10.12] 백남운, 쑨원, 장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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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9,033회 작성일 2011-10-12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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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식 수석논설위원






지난주 일본을 거쳐 한국에 도착한 탈북자 9명 가운데 1명이 북한 최고인민회의 의장을 지낸 백남운(1894∼1979)의 손자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오랫동안 잊혀졌던 백남운이라는 인물이 다시 화제에 올랐다.



경제사(經濟史)를 전공했던 그는 1948년 자진 월북해 북한 역사학의 기초를 세웠다. 우리 역사를 마르크스 방식의 유물사관에 입각해 새로 해석했다. 그가 주도한 북한의 역사관은 고조선 고구려 고려 등 한반도 북부에 자리 잡았던 나라를 중심에 놓는다. 북한 영토에 있었던 나라들은 모두 애국적이고 주체적인 모습을 보였던 반면 남한 영토에 있던 신라 조선은 달랐다는 것이다. 역사적 정통성 면에서 남한을 제외하려는 의도다. 이에 따라 한반도 최초의 통일 국가는 신라가 아닌 고려라고 규정하고 있다.



쉽게 결론 내리기 힘든 근대와 현대의 시대 구분도 명쾌하다. 북한의 근대는 제너럴셔먼호 사건과 병인양요가 일어났던 1866년에 시작된다. 현대는 1926년이 출발점이다. 북한은 미국 상선(商船)인 제너럴셔먼호를 대동강에서 불태워 버린 사건을 김일성의 증조부 김응우가 주동했다고 주장한다. 김일성의 증조부가 근대를 열었다는 시각이다. 현대가 시작되는 1926년은 김일성이 공산주의 운동을 펴기 위한 ‘타도제국주의동맹’을 결성했다는 해다. 김일성 일가에 의해 시대가 갈라지는 셈이다.



‘총성 없는 전쟁’ 벌인 중국 대만



북한 역사학계는 1993년 단군 묘를 찾아냈다고 발표하면서 웃음거리 수준으로 전락했다. 평양의 한 무덤을 진짜 단군 묘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대동강 문화’가 세계 4대 문명에 맞먹는다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권력과 체제 유지를 위해 역사를 어느 정도까지 타락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극단적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북한과는 성격이 다르지만 중국과 대만이 올해 신해혁명 100주년을 맞아 벌이고 있는 ‘현대사 전쟁’은 우리에게도 역사적 정통성을 선점하는 일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 1911년 10월 10일 중국 우창(武昌)에서 일어난 무장봉기로 청나라가 무너지고 1912년 중화민국이 탄생했다. 이 혁명의 지도자는 쑨원(孫文·1866∼1925)이었다.
쑨원은 혁명 이후 대만의 뿌리가 되는 국민당을 만들었으며 대만의 국부(國父)로 추앙받는다. 대만의 마잉주 총통은 “쑨원의 정신을 계승한 대만에서 오늘날 정치가 가장 민주적으로 이뤄지고 있고, 경제가 번성하고 있으며, 교육이 널리 보급됐고, 다양한 사상이 공존하고 있다”면서 중국이 아닌 대만이 역사의 주역임을 강조했다.



중국도 대대적인 ‘쑨원 띄우기’에 나섰다. 이달 들어 톈안먼 광장에는 쑨원의 대형 초상화가 등장했다. 9일 개최된 중국 정부의 신해혁명 기념대회에는 와병설이 나도는 장쩌민 전 국가주석까지 참석했고, 중국 국기 대신 쑨원의 초상화가 기념식장 전면에 내걸렸다. 신해혁명에는 나중에 중국 공산당 간부가 된 인사들이 다수 참여했으며 이들이 쑨원과 함께 중국의 오랜 봉건 체제를 붕괴시킴으로써 ‘사회주의 중국’ 탄생을 가능하게 했다는 게 중국의 인식이다. 중국과 대만이 쑨원이라는 영웅을 각각 자신들의 현대사 속에 끌어들여 정신과 가치 면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치열한 다툼이다.



한국에서 10년간의 좌파 정권 이후 집권한 이명박 정부는 국가 운영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듯하다. 1905년 을사늑약을 통탄하는 논설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을 쓴 언론인 위암 장지연(1864∼1921)은 현 정부 들어 독립유공자에서 친일 세력으로 추락했다. 올해 4월 국가보훈처가 독립유공자 서훈을 취소했기 때문이다. 유족은 법원에 “취소 조치를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정부는 1962년 그를 대표적인 항일 언론인으로 인정해 건국훈장을 수여했다. 하지만 일부 연구자가 그가 말년에 친일 성향의 글을 썼다는 주장을 펴면서 친일 논란이 일어났다. 보훈처가 서훈을 취소한 이후 심사를 담당했던 위원 가운데 좌파 성향 인사들이 포진해 있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보훈처는 심사위원 명단 공개를 계속 거부하고 있다. 정권이 바뀐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심사위원 구성이 편향적이라면 기본적으로 현 정권이 이런 문제에 아무 관심이 없다는 얘기가 된다. 국무회의가 이런 결정을 추인한 것도 납득할 수 없다.



정신·가치에 무심한 이명박 정부



이 사태는 장지연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가 2007년 대통령선거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은 뒤에도 줄곧 고전하는 이유도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정신적 가치와 사관(史觀), 문화적 주도권에서 반대 세력에 휘둘리거나 뒤지고 있는 탓이 크다. 역사교과서 문제만 해도 친북좌파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왜곡을 방치해 왔다. 정부는 남은 임기 동안이라도 우리의 역사적 정통성이 어디에 있는지 바로 인식하고 잘못된 점을 반드시 시정해야 한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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