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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영 칼럼/10.7] 폭풍 前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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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7,184회 작성일 2011-10-10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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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영 논설주간

시장보다 게으른 정치인 시계, 사고 터져야 대책 마련 부산

여론 이미 결판난지 모르고 깨져버린 사회 틀에 매달려… 계층간 분열이 낳은 거대한 火, 화산 꼭대기에서 솟구치기 시작




요즘처럼 정치인이 불쌍해 보일 때가 없다. 뒷돈 받다가 들켜 감방에 가거나 성희롱과 튀는 발언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아 불쌍해 보이는 게 아니다.



이제 점잖은 만찬 중에도 휴대폰으로 문자 결재를 전송하는 금융인이 많아졌다. 시장은 손실을 줄이려고, 또는 이익을 더 내려고 분(分)과 초(秒)를 다투는 결정을 내린다. 난폭하더라도 신속한 결단을 내려야 하는 곳이 시장이다.



그러나 정치의 시계는 더디게 돌아간다. \"같은 여의도지만, 동쪽과 서쪽은 다른 나라\"라고 어느 증권회사 사장은 입버릇처럼 말한다. 여의도 동쪽에는 금융회사가 많고, 서쪽에는 국회와 의원회관이 있다. 경제위기를 걱정해주지 않는 정치가 야속하다는 불만이다. 뭔가 더 큰 것이 붕괴한 후에야 정치가 느릿느릿 나설 것이다.



정치에 속도전을 바라서는 안 된다. 안철수·박원순이 등장하자 \"바람이 이렇게 거셀 줄은 몰랐다\"고들 한다. 두 사람이 오래전에 청년층의 대통령, 시민운동계의 대통령에 취임해 배타적인 통치권을 행사하고 있던 것을 몰랐던 모양이다. 밑바닥 정치시장은 저만큼 흘러가 버렸는데 정치인의 시계는 시장의 시계보다 게으르게 돈다.



엉뚱한 댓글에도 즉각 반응해야 하는 세상이다. 응전(應戰)이 늦어 저쪽을 붕괴시키지 않으면 총알이 내 가슴팍에 박히고 만다. 댓글 하나 감당 못해 자살하는 연예인이 한둘이 아니다.



정치인들은 큰 사고가 터진 다음에야 대책을 협의하곤 한다. 이어 자기네끼리 다투다 지치면 타협한다며 세월을 보낸다. 시장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제1야당 대표는 사퇴 소동을 벌였다. 여당의 실력자는 선거전(戰)에 강제 징용(徵用)됐다. 정치와 시장의 스피드 격차가 정치권에는 고스란히 \'파괴적인 충격\'으로 전달된다.



속도 감각이 없는 정치인만 불쌍해 보이지는 않는다. 국사(國事)를 혼자 고민하는 양 으스대는 특권이 사라지는 줄 모르는 정치인도 안쓰럽다. 유권자가 국회의원을 뽑고 그들이 국민을 대신해 나랏일을 결정한다는 대의(代議)민주주의는 슬슬 무너지고 있다.



인터넷에는 수많은 토론방이 개설돼 있다. 거기서 1차로 어설픈 여론이 만들어지면 인증샷과 트위터를 통해 여론이 다듬어지고 숙성(熟成)되는 과정을 거친다. 5년 전까지만 해도 인터넷은 젊은이들의 놀이터라고 외면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연령층이 확대됐다. 즉석투표와 즉결재판이 이루어지고, 그 결과는 여론의 큰 흐름과 맞아떨어진다.



여론은 벌써 결판난 줄 모르고 정치인들은 당론(黨論)을 수렴하고, 공청회 일정을 잡고, 밀고 당기는 회의로 지루한 의사결정 과정을 밟는다. \'독도는 우리 땅\'을 외치려고 하루 만에 전국 10개 도시에서 수천 명이 깜짝 집회를 성공시키는 시대에 이런 정치는 사하라사막을 400㎞ 달리는 울트라 마라톤처럼 구경꾼들이 보고 있기에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그 고통을 참다못해 \"우리는 당신들에게 결정권을 위임하지 않겠다\"는 정치불신(不信)의 목소리가 나온다.



정치인이 특정 집단과 어느 지역의 다수 의견을 대표해 결정권을 대신 행사하는 대표자라는 인식은 엷어지고 있다. 그 대신 모임의 연락책이 아니면 흥행전문가로 취급받는다. 인터넷 말고도 토론회, 여론조사 등 직접적인 의사표시 기회가 대폭 늘어난 덕분에 그들의 대표성은 죽어가고 있다.



정치인들이 안쓰럽고 불쌍하다 못해 \'도저히 안 되겠다\'고 절망하는 순간도 적지 않다. 깨져버린 기존 사회의 틀을 붙들고 매달려 있는 모습을 볼 때다. 1961년 5·16쿠데타 이후 한국 경제는 엄청난 국부(國富)를 쌓았고, 글로벌 시장에 우뚝 선 재벌을 키웠다. 그 \'한강의 기적\' 연장선상에서 경제를 더 키우려는 논리에만 집착해서 파이를 나눠 먹는 방식을 바꾸는 일에는 무관심한 정치인이 많다.



그러나 지금은 옆집과 우리 집이 똑같은 17인치 TV 앞에서 같은 드라마를 보는 세상이 아니다. 회장의 아들은 회장이 되고, 실업자의 딸은 실업자가 되는 시대다. 취업자 2명 중 1명꼴로 비정규직이고, 세 집 중 한 곳이 전·월세 가구다. 국민 중 3분의 1 이상이 \'비주류\'다. 폭발 직전의 화(火)를 누르고 있는 인구가 그 어느 때보다 많다. 부자 몇 명이 기부금과 세금을 몇 푼 더 내는 것으로 해결될 구조가 아니다.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며 해묵은 틀을 수정할 기회가 있었지만, 계층 간 분열은 그 후 거꾸로 확대됐다. 한국 정치는 14년 동안 이 틀을 바꾸지 못했다. 드디어 초대형 폭발의 화산재가 활화산 꼭대기에서 솟구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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