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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식 칼럼/5.23] 2008년 촛불 집회의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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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9,390회 작성일 2012-05-23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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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식 수석논설위원



지난 토요일 밤 서울광장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3주기 추모문화제’는 다소 가라앉은 분위기였다. 김어준 김용민 주진우 등 ‘나꼼수’ 멤버와 문성근 천호선 김경수 씨 등 지난 총선 때 야권 소속으로 낙선한 인사들이 함께 무대에 올랐다. 문성근 씨는 손을 높이 들고 “연말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하겠다”고 외쳤다. 천호선 씨는 “20대 국회에 다시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무대 아래에서 마이크를 잡은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도 “대선에서 이기겠다”고 말을 받았다. 최근 ‘진보의 위기’가 심각하게 논의되고 있지만 이들에겐 남의 얘기인 듯했다. 관심은 오로지 다음 선거에 가 있었다.



이른바 진보, 내부개혁 기회 놓쳐



진보 진영이 스스로를 쇄신할 기회는 2007년에도 있었다. 선거마다 참패하면서 진보 진영은 대통령선거의 패배를 직감했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노무현 정부는 무능과 비개혁 때문에 실패했으며 특단의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한나라당으로 정권을 넘기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희망제작소 세교연구소 좋은정책포럼 등 진보 진영의 싱크탱크들이 이때를 전후해 결성됐다. 진보 진영에 대해 쏟아졌던 “비판만 할 줄 알지 대안이 없다” “경제에 무능하다”는 질책을 극복하기 위한 대응이었다.









박원순 씨가 주도한 희망제작소는 ‘실사구시(實事求是)적 싱크탱크’를 내세웠다. 박 씨는 “추상적이고 낭비적인 논쟁이 아니라, 생활 속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지혜를 현실적인 정책으로 승화시키는 연구소를 지향한다”고 강조했다. 관용차를 경차나 소형차로 바꾸는 운동 같은 ‘작은 개혁’부터 시작해 진보의 이미지를 차근차근 구축하겠다는 전략이었다. 이때만 해도 진보 진영은 재집권을 위해 충분한 준비기간을 갖겠다는 각오가 충만해 보였다.



민주노동당에서도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났다. 2007년 대선에서 민노당 후보로 나선 권영길 씨는 3.01%의 저조한 득표율을 기록했다. 심상정 노회찬 씨 등 민노당 내 이른바 ‘평등파’들은 2008년 3월 민노당을 탈당해 진보신당을 창당했다. 심상정 씨는 “현재 민노당의 틀로는 대한민국 사회의 미래를 책임지는 진보정치의 희망을 만들어내는 데 한계에 이르렀다”고 탈당 이유를 밝혔다. ‘민노당의 틀’이란 주사파가 장악한 종북(從北) 정당을 의미했다. 심 씨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단단하고 건실한 살림집을 세워올리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종북과의 결별은 진보 진영에 역사적인 전환점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2008년 5월 시작된 광우병 촛불집회는 모든 것을 원점으로 되돌려 놓았다. 진보 진영은 거리를 가득 메운 시위대의 함성을 들으며 재집권이 손에 잡히는 듯했다. 촛불집회를 주도한 진보연대에서 발견된 2008년 6월 17일자 문건은 ‘우리의 진정한 목표는 이명박 정부를 주저앉히는 것. 단기간에 정치적으로 쟁취하는 성과가 있어야 한다’고 적었다. 이들의 전문 영역은 원래 투쟁이고 시위였다. MBC ‘PD수첩’의 왜곡 보도와 국민 건강에 대한 우려에서 촉발된 촛불집회를 반정부 시위로 변질시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진보의 ‘내공’을 쌓는 일 따위는 더는 관심사가 아니었다.



좌우 진영 극한 대립만 심화



돌이켜보면 진보 진영에 촛불집회는 당장은 달콤했으나 스스로를 해치는 독(毒)에 지나지 않았다. 서민의 삶을 위해 현실적 대안을 모색한다던 진보 진영의 싱크탱크들은 요즘 존재감이 없다. 그동안 반(反)이명박 정서에만 의존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제주 해군기지 반대 등 이념 투쟁에 매달려 왔으니 특별한 역할이 없었을 듯하다. 종북과 결별을 선언했던 심상정 씨는 세를 불리기 위해 민노당과 다시 손을 잡고 통합진보당을 만들었다. 그 결과 통진당의 종북 색채를 다시 희석시키는 데 일조를 했을 뿐이다. 반이명박 정서 덕분에 진보 진영의 국회의원 의석이나 지방권력은 늘어났으나 노무현 정권 때부터 지적됐던 역량의 한계는 달라지지 않았다.



촛불집회는 이명박 정부에도 심대한 정신적 상처와 국정 운영의 왜곡을 안겨줬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국무총리실에 설치됐다 폐지된 조사심의관실을 부활해 공직윤리지원관실을 만든 것은 촛불집회 직후의 일이다. 공무원과 공기업 직원들이 정부의 구조조정 계획에 반감을 갖고 있음이 촛불집회를 통해 확인되자 공무원 기강을 다잡기 위한 방안이었다. 이 조직이 저지른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은 정권 후반기 내내 발목을 잡았다. 촛불집회 때 형성된 야권과 반대 세력에 대한 적대감은 좌우 진영의 극한 대립을 부추기는 부작용을 낳았다. 촛불집회는 보수 진보 모두에 그늘을 던졌다.



다시 5월이 찾아오고 마침 미국에서 광우병 소가 발견됐다. 그때 그 세력들이 주최하는 촛불집회가 열렸으나 참석자는 1000여 명에 불과했다. 4년 뒤 시민들은 냉담했다. 총선 패배 이후 통진당의 부정 경선이 드러나면서 진보 진영은 다시 위기를 맞고 있다. 이번에야말로 ‘단단하고 건실한 살림집을 세워 올리는’ 자세가 진보 진영에 필요하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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