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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칼럼-박미현 강원도민일보 논설실장] 1967년 강원도지사 긴급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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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97회 작성일 2023-09-05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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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는 오징어와 명태의 보고였다. 11월부터 석 달은 명태철이고, 오징어는 봄과 가을 그리고 음력 동짓달 연중 세 번 찾아왔다. 가을 접어들면 강원도에선 “고기떼들아 월남하라”라며 노래를 불렀다. 대개 10월 말쯤이면 북쪽 명태떼가 남하하기 시작하는데 1967년은 달랐다. 12월이 돼도 명태어장은 여전히 북강원도 장전 앞바다에 머물러있어 애를 태웠다. 명태어장이 늦게 형성되는 사정은 북측도 마찬가지여서 올라오는 남측 어선을 막느라 경계태세였다. 1967년 11월 3일 오전 어로저지선 근해에서 남측 200여척을 향한 발포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신문은 우리 해군 함정이나 어로지도선은 한 척도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빚을 내서 마련한 어구를 가지고 출어했다가 변을 만났으니 빚은 고사하고 당장 먹고 살길이 없다는 하소연도 실렸다. 그래도 바다로 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오징어와 꽁치마저 안잡혀 끼니를 잇기조차 어렵게 되자 거센 풍랑, 모진 추위, 언제 쏘아댈지 모르는 총격을 무릅쓰고 명태잡이 전쟁터로 뛰어들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사정은 ‘사경 뚫는 명태잡이’ ‘탄우 속의 바다’라는 제목으로 보도됐다.

1967년과 68년이 강원 어민들에게 유난히 수난이 컸던 해로 기억되는 데는 더 큰 이유가 있다. 크리스마스날 내무부에서의 강원도지사 긴급지시가 시발이었다. 정부에서 납북어민에게 반공법을 적용해 ‘일벌백계주의’로 나가도록 엄명한 것이 1967년 12월 26일자 동아일보 사회면에 ‘귀환한 어부 입건, 내무부 지시 수산업법·반공법 적용’으로 큼지막하게 보도됐다. 68년 신년초 들자 여러 신문에서 어민 구속 뉴스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속초경찰서에서는 일벌백계 지시에 한술 더 떠 반공법에 국가보안법, 개항질서법까지 총 4개 법 위반으로 잡아들였다고 알렸다.

그해 3월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의 귀환 어부에 대한 강력한 보안 대책, 11월엔 신용관 해양경찰대장의 사실상 간접적인 간첩으로 규정해 모조리 구속하겠다는 발언이 신문이 실렸다. 68년 12월의 마지막 뉴스는 ‘사형 구형’으로 커졌다. 두번 이상 납북된 경우는 사형을 구형하라는 대검찰청 공안부 담당 한옥신 검사의 전국 지검 지시가 일제히 보도됐다.

사형이 되더라도, 간첩으로 몰리더라도 납북어부는 계속 생겨났다. 정부의 안전 조업 대책은 빈약했고, 선박장비를 갖출 수 없는 이들에겐 가족이 처할 바다 보릿고개가 그보다 더 절박했다. 지난 금요일(8월 30일) 춘천지법 속초지원에서 1968년 반공법 위반죄로 유죄판결된 ‘납북어부’ 사건 23명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당대 신문을 살펴보니 무죄를 선고한 판사도 있고, 징역 10년형을 구형한 검사에 범죄로 인정한 판사도 있었다. 법과 제도가 같고 상황은 비슷했으나, 사법 결과는 담당이 누구냐에 따라 달랐다. 50여년 인생행로를 뒤엎을 정도로. 박미현 논설실장
 

원문보기 : http://www.kado.net/news/articleView.html?idxno=120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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