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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칼럼-김영희 한겨레 편집인] ‘돌담병원’ 판타지와 ‘간호법’ 현실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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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279회 작성일 2023-05-12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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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문제 해결에 ‘만능 치트키’는 없다. 분명한 건 갈수록 고령화 속도가 빨라지고 지역사회 돌봄에서 의료서비스가 중요해지는 사회에서 수십년간 경직된 의료체계가 그대로 작동할 순 없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변화의 방향은 지금보단 좀 더 유연하고 직능 간 수평적 관계를 강화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에스비에스>(SBS)의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3>의 돌담병원은 간호법 갈등 국면에서 한층 더 판타지로 느껴진다. 에스비에스 제공 

<에스비에스>(SBS)의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3>의 돌담병원은 간호법 갈등 국면에서 한층 더 판타지로 느껴진다. 에스비에스 제공 



김영희 편집인 

<에스비에스>(SBS)가 방영 중인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3>에서 돌담병원은 권역외상센터가 되어 돌아왔다. 의료진은 아직 준공 허가도 떨어지지 않은 외상센터로 위독한 탈북환자들을 선상에서 데려와 어둠 속 수술을 강행한다. “좋은 의사, 최고의 의사”보다 “필요한 의사”로 매일을 사는 김사부의 모습은 이번 시즌도 변함없다. 


현실에 ‘김사부’ 같은 의사가 없는 건 아니다. 하루 2~3시간씩 병원에서 눈 붙이고, ‘돈 안 되는’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과 등 필수과에서 헌신하는 의사들은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돌담병원 같은 곳은 드물다. 대구에서 추락 사고를 당한 청소년은 2시간 넘게 응급실을 돌다 숨졌다. 특히 한 권역외상센터는 빈 병상이 있는데도 자리가 없다며 수용을 거부했다. 2012년 정쟁 속에 무산될 뻔하다가 이국종 교수의 ‘피 토하는’ 호소로 겨우 출범한 권역외상센터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었던 셈이다. 닥터헬기로 1시간 내 이송 가능한 센터 7곳을 집중 지원하자던 구상이 17곳 나눠주기식으로 바뀌고, 정부가 외상센터의 환자 수 관리를 외면할 때부터 ‘부실’ 운영 가능성은 예견됐었다.


서로를 존중하며 팀워크를 발휘하는 돌담병원은 요즘 판타지물에 가깝다.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거론되는 간호법 문제에서 국민 눈에 도드라지는 건 직능 간 갈등뿐이다. 간호협회는 돌봄 수요가 높아지는 시대에 필요한 ‘부모효도법’이며 윤 대통령과 여당의 대선 공약이었음을 내세우고, 의사협회와 간호조무사협회 등은 자신들의 직역을 침범할 ‘간호사 특례법’이라며 총파업 예고로 맞서고 있다.


지금 간호법이 최선이냐 묻는다면 나 또한 아니라고 할 것이다. 간호조무사들의 학력 제한을 푸는 조처를 간호협회가 선제적으로 할 순 없었을까, 이토록 간호사 권익을 중시하면서 왜 그동안 간호사들의 극단적 선택을 불러왔던 ‘태움’ 문화에 제대로 반성의 목소리를 내지 않았을까, 걸리는 대목이 많다. 종합병원들이 전문의·간호인력을 최소화해 이윤을 쥐어짜는 구조가 근본 배경인데다 의료인력 내 위계적 질서의 기나긴 역사와 문화가 뒤엉켜 있어, 당사자들 스스로 갈등을 풀 가능성도 낮아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정당화할 순 없다고 본다. 대선 때 약속을 뒤엎는다는 ‘정치적 부담’도 문제지만, 여야 의원 모두가 발의했던 법안을 행정부가 깡그리 무시하는 선례가 되고 직능 갈등은 더 격렬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지역사회’ 문구가 선언적으로 들어간 것 외에 현행 의료법을 대부분 가져온 간호법이 당장 일으킬 변화는 없다. 이 말은 앞으로 조정할 게 많고 거기에 달렸다는 뜻이다.

오랜 세월 ‘수가 인상’과 ‘의사 수 확대’ 주장이 해법으로 팽팽히 맞서왔지만 의료 문제 해결에 ‘만능 치트키’는 없다. 전공의 기피 현상을 해결한다며 십수년 전 난도 높은 흉부외과 시술 수가를 100% 인상한 뒤에도 흉부외과 지원율은 늘지 않았다. ‘접근성’과 ‘규모의 경제’ 사이 적절한 지점을 찾는 데 실패했던 권역외상센터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의사 증원 자체보다 어디에 어떻게 늘리느냐가 관건이다.


갈수록 고령화 속도가 빨라지고 지역사회 돌봄에서 의료서비스가 중요해지는 사회에서 수십년간 경직된 의료체계가 그대로 작동할 순 없는 법이다. 그렇기에 변화의 방향은 지금보단 좀 더 유연하고 직능 간 수평적 관계를 강화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권력과 로비 창구가 되다시피 한 의료전문직 단체들이 사회적 책임을 느낄 수밖에 없게 해야 가능한 일이다. 최근 17개 의료직능단체와 환자단체 사람들이 출범시킨 ‘더 좋은 보건의료연대’는 ‘환자 중심 보건의료체계로의 전환’을 어젠다로 걸고 의료 공급 확대와 초고령 사회 대비를 방안으로 꼽았다. 보건의료직역의 전문 역량과 직역 간 협력 강화도 강조했다.


어느 한편이 백기를 들어야 끝나는 갈등은 파국을 재촉할 뿐이다. 한국 인구 대비 병상 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3배 정도 많은데, 세브란스·아산·서울대병원은 2028년까지 수도권에 6천여 병상을 건설 중이다. 지역의료는 초토화될 것이다. 초고령 사회가 코앞인데 방문진료를 하는 동네의원은 0.4%에 불과하다. 코로나 3년을 버티게 해줬던 지방의료원들은 환자도 의사도 떠나 연말 임금체불 상태를 우려할 정도다. 간호법 논의를 병원 문제와 보건의료인력 전체를 시야에 넣은 의료체계 전환 논의의 계기로 만들 순 없을까. 우선 정부와 여당이 일방적인 간호법 ‘왜곡’을 멈추고 야당은 공약 파기를 ‘정치적 호재’로만 삼는 듯한 태도를 버려야 한다. 직능단체들 또한 갈등을 줄이기 위해 먼저 나서는 쪽에 여론이 선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돌담병원의 판타지만 바라보기엔 시간이 없다. 


원문보기 :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9122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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