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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칼럼-양상훈 조선일보 주필] 졸병 정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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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333회 작성일 2023-04-13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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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모두 새 지도부 뽑고 지지율 하락 기현상
한 명 대장 밑에서 이병, 일병들 옹기종기
나라 이끌 만하다 국민이 생각하겠나 




정당이 당 지도부를 새로 뽑는 전당대회를 하면 지지율이 오른다. 컨벤션 효과라고 한다. 세계 모든 나라에서 그렇다. 전당대회 기간 내내 뉴스가 되는 데다 새로 뽑히는 지도부에 대한 대중의 기대도 작용한다. 크든 작든 지지율이 오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여당이 전당대회를 하고서 지지율이 떨어지는 기현상이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나 처음 보는 것 같다.


국민의힘 당대표로 선출된 김기현 의원이 지난달 8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제3차 전당대회에서 당기를 흔들고 있다./이덕훈 기자

국민의힘 당대표로 선출된 김기현 의원이 지난달 8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제3차 전당대회에서 당기를 흔들고 있다./이덕훈 기자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고 한다. 전당대회와는 별개로 주 52시간제 개편안에 대한 불만, 한일 관계 개선 과정에서 일어난 문제 등이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그런 한편으로 여야 할 것 없이 우리 정치가 졸병(卒兵)들의 시대로 바뀐 탓도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여야 모두 대장(大將) 한 명과 졸병 수백 명만으로 구성된 부대 같다는 느낌이다.

여당 전당대회는 대장과 함께 부대를 이끌 군단장 중장(中將·당대표)과 사단장 소장(少將·최고위원)들을 뽑는 것이지만 뽑힌 사람들이 하나같이 장군이 아니라 졸병들처럼 보이니 별 감흥을 주지 못한다. 국민이 새로 뽑힌 지도부에서 그 당과 정치의 미래를 볼 수 있어야 지지가 오르는데 이등병에서 진급한 일등병들이 지도부라며 도열한 모습을 보고 그런 미래를 볼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심지어 이번 전당대회는 출마자들이 누가 더 진짜 졸병인지 경쟁하듯 했다.

과거 군대에서 졸병은 ‘생각 자체를 하지 말라’고 했다. 위에서 시키는 대로만 하라는 것이다. 여당은 자신의 생각 없이 오직 시키는 대로만 할 졸병이 누군지를 뽑았다. 신임 당대표가 연대, 포용, 탕평을 으뜸 선거 공약으로 내걸고서 당선되자마자 정반대로 한 것은 ‘자신의 생각은 없애고 시키는 대로만 하는’ 졸병 의식이 드러난 것으로 본다.

졸병 정치 시대가 온 것은 공천 탓이 크다고 생각한다. 특히 국민의힘은 과거 여러 차례의 국회의원 공천을 그야말로 최악으로 했다. 당시 이들 공천의 키워드 중 하나가 ‘내시형’ 이다. 자신의 소신을 펼 정치인의 기질이 보이면 배제하고 순응하고 잘 따르는 내시형들에게 공천을 주는 경향이 있었다. 이제 국민의힘에는 정치인이라고 볼 만한 사람이 몇 명이나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졸병들 중에서 누구를 뽑아 장군 자리에 앉힌다고 해도 국민이 그를 장군으로 보지 않는다.

과거 정당은 ‘대장과 졸병들’이 아니라 ‘대장과 동지들’이었다. 김영삼계 김동영, 최형우, 김덕룡, 서청원 등을 졸병으로 볼 사람은 없을 것이다. 김대중계 김상현, 정대철 등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군 출신 대통령 아래의 민정당에서도 박태준, 이종찬, 김윤환, 이춘구 등이 있었다. 위아래는 분명했지만 함께 가는 목표가 있었고 나름의 소신들이 있었다. 이들 중간 보스는 졸병 아닌 장군이었다. 대장 중심으로 뭉친 장군들을 보면서 국민은 이들이 나라를 이끌 만한지 가늠했다.

그런데 민주화의 역사가 길어지면서 새로 등장하는 대장들은 오히려 휘하를 장군이 아니라 졸병화시키는 역설이 벌어지고 있다. 대장 한 사람을 둘러싼 수백 명 졸병들을 보면서 국민은 어떤 생각을 하겠나. 이등병 세상에서 일등병이 실세라고 하는 지경이다. 이런 군대가 전쟁을 한다는 것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 졸병들뿐이니 당내에 목소리는 하나밖에 없다. 그 목소리는 국민에게는 잘 들리지도 않는다. 어쩌다 들리는 소리는 실소를 자아내는 잡음들뿐이다.

전당대회를 하고 당 지지율이 떨어진 희귀한 사례가 국민의힘 이전에 한 번 있었다. 이재명 대표가 민주당 경선에서 이겼을 때다. 난형난제다. 국민은 이재명 대표를 보고 당의 밝은 미래가 아닌 어두운 미래를 보았을 것이다. 지금 민주당의 대장은 계급장이 반쯤 떨어져 덜렁거린다. 졸병들이 따르는 진짜 대장은 ‘개딸’ 등 극성 지지층과 ‘무당 유튜버’다. 이들 민주당의 진짜 대장은 정치인들을 폭력적으로 졸병화시키고 있다. 자연스레 민주당 졸병 정치인들은 저질스러운 언행과 무책임한 선동을 달고 산다.

주위의 많은 분들이 TV에 여야 지도부가 앉아 있는 모습이 나오면 채널을 돌려 버린다고 말한다. 그중에 혐오스러운 사람도 있지만 대개는 아무런 존재감 없는 인물들에게 관심 자체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졸병 정치인들에게 없는 것 중 가장 핵심은 ‘존재감’이다. 존재감은 정치인에게는 필수적이지만 졸병에게는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들이 당 공천은 받겠지만 국민의 선택까지 받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국민의 생각은 참으로 다양하다. 5100만 가지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의 표를 얻고 모으려면 대장 휘하에 다양한 출신과 이력, 개성을 가진 장군들이 포진해야 한다. 미래가 있어 보이는 젊은 소위, 중위도 많아야 한다. 이 사람들을 졸병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더 키우는 것이 대장의 큰 책무다. 그것이 자신을 위하는 길이기도 하다.

양상훈 주필

양상훈 주필 

원문보기 : https://www.chosun.com/opinion/column/2023/04/13/ZWYWRXBI7JDG3BSHFQWQR226T4/?utm_source=nave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naver-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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