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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칼럼-이하경 중앙일보 주필] 북핵 ‘아마겟돈’과 이재명의 ‘죽창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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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317회 작성일 2022-10-17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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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경 주필·부사장

이하경 주필·부사장


미국과 소련은 1962년 쿠바 위기 때  핵전쟁의 벼랑 끝에서 13일간 사투를 벌였다. 흐루쇼프를 상대한 케네디는 핵전쟁 가능성이 “3분의 1에서 절반 사이”라고 했다. 그레이엄 앨리슨과 필립 젤리코는 공저 『결정의 본질』에서 “전쟁이 터졌다면 미국인 1억 명과 소련인 1억 명 이상뿐 아니라 유럽인 수백만 명이 희생됐을 것”이라고 했다.

60년이 지난 지금 호전적인 지도자 두 사람이 핵 발사 버튼을 누르겠다고 협박 중이다. 러시아의 푸틴과 북한의 김정은이다. 북한은 핵 선제타격을 법제화 했다. 김정은은 자신이 위험에 처했을 경우 ‘자동·즉시 발사’라는 비상플랜까지 완성했다. 한·미의 ‘참수작전’에 굴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중국이 대만을 침공해 TSMC를 점령하는 것을 막기 위해 시설을 파괴하고 엔지니어들을 철수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바이든 행정부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시진핑 1인체제 출범 이후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미국은 주한·주일 미군을 동원하려 할 것이다. 한국은 미·중 전쟁에 휘말릴 수 있다. 주한미군의 공백은 도발을 꿈꾸는 북한이 간절히 기다리는 시나리오다.

김정은 유고 시 자동 핵 발사 예고
대한민국 아마겟돈 위기에 직면
이재명, 수사 칼날 무디게 하려고
안보 외면하면 지도자 자격 없어

러시아·중국은 핵무기 보유국이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쿠바 위기 이후로 지금처럼 ‘아마겟돈’ 위기에 직면한 적이 없다”고 토로했다. 사실상 핵 보유국인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한국은 잠재적 대재앙의 첫 번째 당사자다.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은 5500㎞의 거리를 두고 대치했다. 지금 한·미 동맹은 핵 버튼에 한 손을 올려놓은 김정은과 코를 맞대고 있다. 미국은 소련, 러시아와 대사급 외교관계와 핫라인을 유지해 왔다. 그래서 쿠바 위기 때도 필사적인 소통으로 ‘공포의 균형’을 가동시켜 핵전쟁을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한·미는 북한과는 대사급 외교관계도, 핫라인도 없다. 외부 정보 수집과 소통 능력이 떨어지는 폐쇄집단 북한이 오판할 경우 한반도는 생지옥이 될 것이다.

물샐틈없는 안보태세, 오판을 막기 위한 소통 채널을 모색하는 초당적 노력이 절실하다. 그러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북한 핵 공격에 대응하기 위한 윤석열 정부의 한·미·일 연합훈련 참여에 대해 “극단적 친일 행위이고 친일 국방”이라고 비난했다. 우리를 협박하는 북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친일몰이의 ‘죽창가’를 불렀다. 같은 당 김병주 의원은 “미군이 상주하듯 일본 자위대가 한국에 들어올 수 있다”고 거들었다. 연합훈련은 문재인 정권 시기인 2017년 한·미·일 국방장관이 합의했다. 김 의원이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이던 시기에도 여섯 차례나 있었다.

칸트는 『영구평화론』에서 시민이 전쟁에 반대하기 때문에 공화정이 평화애호적이라고 했다. 자유주의 국제정치 이론은 “민주주의 국가끼리는 전쟁을 하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독재 국가인 북·중·러의 위협이 커질 때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를 공유한 이웃 일본과의 협력은 최선의 생존책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사쿠라”로 매도당하면서도 박정희 대통령의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에 찬성했다. 반일 여론이 압도하던 시대에 당의 입장을 뛰어넘어 국익을 선택한 큰 정치인이었다. 대통령이 된 뒤에는 양국관계를 한 차원 높인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만들어냈다.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와 반성을 받아냈고, 전후 일본이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수행해 온 역할을 높이 평가했다. 정세균 민주당 상임고문도 “한·미·일 3국 안보협력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의 조국에 이은 이 대표의 ‘죽창가’는 시대착오적이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계승해 빠르게 한·일 관계를 복원해 나갈 것”이라고 한 윤 대통령의 원숙한 자세와 대비된다.

일본의 도움 없이는 한·미가 북한의 도발에 맞설 수 없다. 미국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함의 모항인 요코스카 해군기지를 포함한 일본 내 7개 유엔사 후방기지의 지원은 대북 방어에 결정적이다. 일본은 한국전쟁 때도 미군의 핵심 거점기지였다. 1953년 1월 일본 내 미군기지는 733개였다. 출격 기점으로서의 전진기지, 병사와 물자 수송의 역할을 하는 중계기지, 물자 보급과 훈련·휴양을 위한 후방기지 역할을 했다(『기지국가의 탄생: 일본이 치른 한국전쟁』 남기정).

주일 미군기지에서 한반도로 100만여 회 출격했고, 폭탄은 70만t이 투하됐다. 인천상륙작전을 위해 병사 1만 명이 수송됐고, 원산 상륙을 위한 기뢰 제거와 미군 수송에 8000명의 일본인이 동원됐다. 로버트 머피 초대 주일 미국대사는 “일본이 없었다면 미국은 한국에서 전쟁을 수행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왜 국익에 반하는 친일몰이를 하는 것일까. 자신을 겨눈 윤 정부 검찰 수사를 무디게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러나 안보를 외면하면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된다.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국가를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이란 정당과 내부 정치라는 속박에서 벗어나 국민의 경험과 지도자의 이상 사이에 다리를 놓는 것”이라고 했다. ‘차기’ 주자인 이 대표의 성찰을 기대한다.

원문보기 :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09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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