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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칼럼-양상훈 조선일보 주필] 검사스러움에서 대통령스러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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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297회 작성일 2022-09-29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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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에게 가장 필요하지만
검사에겐 필요 없는 것은 공감하는 능력
尹, 검사 체질 벗어나고 주위 고언 받아들이길
아직 시간은 있다 


시중에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많이 나오는 말이 ‘아직 검사 체질을 벗지 못했다’는 것이다. ‘검사스러움’이 그대로라는 뜻이다. 필자가 만나 본 검사 출신들 중에는 겸손하고 매사에 조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개중에는 세상을 만만하게 보는 사람들도 없지 않았다. 젊을 때부터 주위에서 떠받들어졌으니 본인이 스스로 경계하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오만함에 빠질 수 있는 것이 검사 직업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연합뉴스 

오래전 한 식당에서 여러 분과 함께 식사 중이었는데 일행 중 중소기업인 한 분이 문 밖의 어떤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그 기업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영감님”이라고 그 사람을 불렀다. 기업인이 데려와 인사시킨 그 ‘영감님’은 30대 초반 정도로 보였다. 그 영감님이 검사였다. 젊은 검사도 ‘영감님’이라 불린다는 말은 들었지만 실제로 눈앞에서 보니 놀라웠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권력이 큰 집단이 검사라고 한다. 우리 사회에선 검사의 법적 권한에 더해 ‘영감님’식 떠받들기까지 합쳐져 있다.

무슨 직업이든 오래 한 사람은 그 직업 특유의 체취를 쉽게 떨치기 힘들다. 검사의 경우 현직을 떠나 변호사로 고생을 하게 되면 검사스러움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검사 외에 다른 경험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변호사 시절이 있지만 너무 짧아 없는 것과 같다. 검사를 그만두고 정치를 하다 대통령이 된 것도 아니고 사실상 검사에서 곧바로 대통령이 됐다. 이러면 누구든 바로 ‘검사스러움’을 탈피하기는 힘들 것이다.

취임 초 윤 대통령의 언행, 특히 어법에서 ‘검사스러움’을 느낀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검사 출신 발탁이 너무 많지 않은가’라는 질문에 “필요하면 더 하겠다”고 그 자리에서 역으로 공격하는 답을 했다. 처음 들어보는 대통령의 어법에 많은 분이 적응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생소한 대통령의 어법을 본 사람들의 평가는 부정적인 쪽으로 흐르고 있다.

‘검사스러움’에는 긍정, 부정의 측면이 다 있을 것이다. 부정적인 면으로 가장 큰 것은 ‘오만’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을 쉽게 보는 경향이다. 검사가 다 알고 최고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재벌 총수, 국회의원, 장관도 검사 앞에 불려오면 떨어야 한다. 범죄 증거를 못 찾으면 먼지떨이로 다른 약점을 잡아 구속시킨다. 이렇게 30년을 보내면 세상이 발아래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은 결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중에서도 정치의 세계에 이런 검사스러움은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역풍을 부른다. 정치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사는 것이다. 마음을 사려면 타인들을 존중해야 하고 그들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 최소한 그런 척이라도 해야 한다. 정치인에겐 공감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뜻이다. 정치인과 검사가 가장 다른 것은 정치인에겐 공감 능력이 생명과도 같고 검사에겐 공감 능력은 불필요하다는 사실이다. 공감 능력이 필요 없는 직업에서 30년을 보낸 사람이 가장 공감 능력이 필요한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그것도 갑자기 벌어진 일이다. 사람들은 처음엔 이상하다고 생각하다가 차츰 돌아서게 됐다.

윤 대통령의 정책 방향은 대부분 옳다고 생각한다. 정책 방향과 상관 없는 다른 문제들이 대통령의 지지도와 위신을 갉아먹고 있다. 그런 문제의 거의 전부가 윤 대통령 자신과 부인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지적하고 또 지적했지만 윤 대통령은 듣지 않고 있다. 이준석 사태도 윤 대통령이 일을 검사 식으로 처리하려다 커진 것이다.

대통령 부인의 대외 활동이 심각한 역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 명백한데도 이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고언을 무시한다. 윤 대통령은 쓴소리에 대해 ‘나를 가르치려 한다’고 불쾌해한다고 한다. 가르치려는 것과 고언은 비슷한 것 같지만 전혀 다르다. 가르치려는 것은 잘난 척이고 고언은 걱정하는 것이다. 지금 누가 대통령 앞에서 잘난 척하겠나. ‘나를 가르치려 말라’는 것은 엘리트 검사의 우월 의식일 수 있다. 이렇다면 누구도 제대로 된 조언을 할 수 없다.

검사는 다른 사람이 싫어해도 밀어붙일 수 있지만 대통령은 국민이 싫어하는 일을 할 자유가 없다. 세상에 제일 어려운 것이 인사(人事)인데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이 아는 검사들 승진시키듯 쉽게 인사를 했다. 대통령실 인사 담당이나 금융계 자리에 검찰 출신을 임명한 것은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그 결과가 장관 연속 낙마와 대통령실의 무능이다. 윤 대통령이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공유하고 공감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옳은 정책도 지지를 받아 실현하기 어려워진다. 꼬리가 몸통을 흔들다 넘어뜨리는 꼴이다.

검사스러움과 대통령스러움은 반대에 가깝다. 윤 대통령은 검사스러움 중에서 법 수호 의지만 남기고 나머지는 버렸으면 한다. 이제 대통령 임기의 7.5%가 지났을 뿐이다. 아직 시간은 있다.

원문보기 : https://www.chosun.com/opinion/column/2022/09/29/UYQQ2723WVF3HKL5I4WWMXZZT4/?utm_source=nave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naver-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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