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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칼럼-천광암 동아일보 논설실장] 조용한 내조와 제2부속실 폐지, 깨도 되는 공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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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361회 작성일 2022-06-20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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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리스크’는 20대 대선 핫이슈, 따라서 ‘조용한 내조’도 핵심 공약
제2부속실 ‘흑역사’까지 감안하면 국민과의 약속 쉽게 깨려 해선 안 돼

천광암 논설실장

과거 대선이 끝나고 새 대통령이 취임하면 자주 등장하곤 했던 담론 중 하나가 뗏목론이다. 금강경의 ‘사벌등안(捨筏登岸)’이라는 말에서 나왔다. 언덕에 오르려면 강을 건널 때 썼던 뗏목을 버려야 하듯이, 국정운영에 짐이 될 것 같은 공약은 과감히 파기하라는 것이다. 일단 당선되고 보자는 식의 공약(空約)이 난무하는 우리 정치의 현실을 감안하면 뗏목 버리기는 필요악 같은 측면이 있다. 그리고 뗏목 버리기는 어느 대통령 때고 예외 없이 행해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 최저임금 1만 원’ 공약과 ‘광화문 시대 개막’ 공약을 파기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65세 이상 모든 노인 대상 월 20만 원 기초노령연금 지급’ 약속을 깼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반도 대운하, 행정수도 세종시 이전, 동남권 신공항 건설 공약을 줄줄이 폐기했다.

그래서인지 우리 정치권에는 여야를 불문하고 공약 파기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김건희 여사의 조용한 내조와 제2부속실 폐지’ 공약을 둘러싸고도 야권 일각에서조차 파기를 권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제2부속실을 설치하지 않겠다고 공약한 것에 대해 사과하고 제2부속실을 만들어 김 여사를 서포트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우선 김 여사가 아무리 조용한 내조를 하더라도 대통령 부인으로서 반드시 수행해야 할 업무가 있고, 여기까지는 공적 라인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 사적인 인연으로 얽힌 정체불명의 인물들이 김 여사 주변에 어른거리면서 내는 잡음과 혼란을 생각하면 꼭 필요한 조치다. 하지만 ‘조용한 내조’와 동전 앞뒷면 관계에 있는 ‘제2부속실 부활’은 이런 차원을 넘어서는 문제다.

제2부속실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1970년대 초다. 1973년 11월 일명 ‘가짜 중앙정보부 요원 구타 사건’을 놓고 이후락의 중정과 육영수 여사의 제2부속실이 ‘충돌’한 적이 있다. 결과는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중정의 완패였다. 물론 그 전부터 다른 요인들이 첩첩이 쌓여 있기는 했지만 정권 2인자로 행세하던 이후락 정보부장은 이 사건으로부터 한 달 뒤 권좌에서 밀려났다. 누가 옳았는지를 떠나서 제2부속실 권력이 얼마나 막강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그것이 악용됐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박근혜 대통령이 생생하게 보여줬다. 박 대통령은 배우자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제2부속실을 존치시키면서 “소외계층을 살피는 민원창구로 활용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공언과 달리 제2부속실은 최서원(최순실)이 막후에서 국정을 농단하는 비밀통로이자 가림막으로 쓰였다. 이런 ‘흑역사’를 가진 제2부속실의 문패를 다시 꺼내 쓸 이유가 없다. 


‘조용한 내조와 제2부속실 폐지’ 공약에 실린 무게도 중요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김 여사의 허위 경력 의혹이 집중적으로 제기되자, 그달 22일자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제2부속실을) 폐지하는 게 맞다고 본다. 대통령 부인은 그냥 가족에 불과하다”고 했다. 또 이로부터 4일 뒤 김 여사는 공식 사과회견을 하면서 “앞으로 남은 선거 기간 동안 조용히 반성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갖겠다. 남편이 대통령이 되는 경우라도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약속했다. 20대 대선은 역대 어느 선거보다도 여야 유력 후보의 ‘배우자 리스크’가 뜨거운 쟁점으로 부상했던 선거다. 따라서 조용한 내조와 제2부속실 폐지는 윤 대통령이 내놓은, 그렇고 그런 수백 개의 공약 중 하나가 아니다. 윤 대통령 부부가 국민에게 한 가장 중요한 약속 중 하나다. 넥스트리서치가 8, 9일 SBS 의뢰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김 여사의 행보에 대해 “내조에 집중하는 편이 낫다”는 의견(60.6%)이 “대통령 부인으로서 공적 활동을 하는 편이 낫다”는 의견(31.3%)을 크게 앞선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제2부속실 폐지만 약속했던 것이 아니다. “청와대 직원을 30% 줄이고 수석비서관을 없애 청와대를 기구 중심이 아니라 일 중심, 어젠다 중심으로 바꾸겠다”는 다짐도 했다. “내가 집권하는 한 검찰공화국이 될 일은 없다”고도 했다. 이런 약속들은 선거가 끝났다고 해서 ‘함부로 버려도 되는 뗏목’으로 치부돼서는 안 되는 것들이다. 윤 대통령이 다른 뗏목을 버리고서라도 올라야 할 ‘언덕’이다.


원문보기 :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20619/114006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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