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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칼럼-이하경 중앙일보 주필] 퇴임하는 문재인 대통령 최후의 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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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80회 작성일 2022-05-02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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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경 주필·부사장 

이하경 주필·부사장 


문재인 대통령은 “길은 멀고 날은 저물었다”고 토로했다. JTBC ‘대담-문재인 5년’에서 임기 내 추진한 종전선언이 무산된 데 대해 안타까워하면서 남긴 말이다. 어디 종전선언뿐일까. 지난 5년의 국정 운영을 돌이켜보면 회한(悔恨)으로 가슴을 칠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못한 일을 윤석열 당선인이 용기있게 잘 해달라”며 축복해야 했다. 평생의 라이벌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도 정권교체기에는 매주 만나 흉금을 털어놓고 통합의 모범을 보였다.

그러나 퇴임을 앞둔 문 대통령은 작심한 듯 분열의 언어를 토해내고 있다. 새 정부의 집무실 용산 이전(移轉)에 대해 “청와대라는 공간이 의식을 지배해서 소통을 못하게 된다? 그게 잘 납득이 되겠는가”라고 비판했다. 후보 시절 “조선총독부 관저, 경무대에서 이어진 청와대는 지난 우리 역사에서 독재와 권위주의 권력의 상징”이라며 “광화문 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설령 추진 과정이 매끄럽지 않더라도 내가 못 지킨 공약을 어려움을 무릅쓰고 이행하려는 후임자에게 경의(敬意)를 표시하고 협조했어야 했다. 하지만 스스로 내뱉었던 과거 발언을 부정하는 정반대의 기이한 논리를 펼치고 있다.

‘길은 멀고 날은 저물었다’면서
위기 감당할 후임자 축복은 없고
자화자찬·편가르기로 불화 초래
위헌적 검수완박 거부권 행사를

“부동산 가격 상승은 전 세계적 현상이었다. 우리 상승 폭이 가장 작은 것에 속한다”는 현실 부정의 궤변은 또 무엇인가. 문 정부의 부동산 실정(失政)은 민심이반·정권교체의 결정타였다. 그런데도 반성과 사과가 아닌 자화자찬에 나선 것이다. 윤 당선인의 선제타격 발언,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도 부적절하다. 경제·안보의 아슬아슬한 복합 위기를 빈틈없이 대처해야 하는 차기 대통령의 리더십을 이렇게 흔들어도 되는 것인가. 대선 직후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무엇보다 지금은 통합의 시간이다”라고 하지 않았는가. 이러니 “남은 임기 동안 국민께 예의를 지켜 달라”는 반격이 나오는 것이다.

검수완박 입법은 국가형사사법체계를 송두리째 뒤흔들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반부패기구도 부패·뇌물범죄 수사 역량 약화를 우려했다. 문 대통령 자신이 원인 제공자다. 그가 시동을 걸자 171석의 민주당 국회 권력은 민심을 거역하고 폭주했다. 문 대통령은 사실상 자신을 보호하는 장치인 위헌적 검수완박 법안의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 그것이 헌법 수호자인 현직 대통령으로서 양심을 지키는 최후의 책무다.

세계 최초의 대통령 워싱턴이 보여준 저 무욕(無慾)의 자제력이 아쉽다. 그는 월급도 제대로 못 받는 오합지졸의 식민지 군대를 지휘해 세계 최강 영국군과 8년 간의 사투 끝에 승리한 총사령관이고, 압도적 카리스마를 가진 미국 독립의 영웅이었다. 하지만 “합중국의 왕이 돼 달라”는 쿠데타 요청을 단호히 뿌리쳤다. 대륙회의를 찾아가 권력의 상징인 칼을 반납하고 한 사람의 농부가 돼 고향 마운트버넌으로 돌아갔다.

기원전 5세기 고대 로마의 전설적인 장군 킨키나투스가 걸었던 길을 선택한 것이다. 킨키나투스는 강력한 외적의 침입으로 로마가 위기에 처하자 6개월 임기의 독재관으로 임명됐다. 나라를 구한 뒤 임기가 5개월여 남았지만 즉시 초라한 오두막의 농부로 돌아갔다. 고대 로마의 영웅 카이사르, 영국 청교도혁명의 주역 크롬웰은 스스로 절대권력이 돼 공화정을 무너뜨렸다. 하지만 워싱턴은 18세기의 킨키나투스가 돼 미숙아였던 신생 미합중국을 민주공화국으로 거듭나게 했다. ‘반란군의 수괴’ 워싱턴과 싸웠던 영국 국왕 조지 3세도 “그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인간”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워싱턴은 1798년 만인의 열망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초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두 번째 임기가 시작되기 전에는 내키지 않아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범죄자”라고까지 했다. 종신 대통령이 돼 달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임기 종료 6개월 전에 기습적으로 고별사(Farewell Address)를 발표해 스스로 독재자가 될 가능성을 차단했다. 그가 두 번째 임기를 마치고 낙향해 농장주가 됐을 때 같은 시대 유럽의 풍운아 나폴레옹은 “후손들은 그를 위대한 제국의 창설자로 숭배하며 그에 관해 말할 것이다. 그때 내 이름은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잊힐 것이다”고 예언했다.

워싱턴은 국왕도, 종신(終身) 대통령도 될 수 있었지만 농부가 돼 공생애(公生涯)를 마감했다. 법도, 선례도 없었던 시절 초인적인 절제로 ‘2선 후 퇴임’이라는 불문율을 세워 건강한 미국 대통령제의 신화를 창조했다. 종신 집권을 꿈꿨던 한국의 독재자 대통령들, 5년 내내 국가를 분열시키더니 임기 말에 차기 대통령과 불화하는 문 대통령과는 달랐다.

문 대통령의 임기는 일주일 남았다. 어느새 길은 멀고 날은 저문 황혼(黃昏)의 순간을 맞았다. 무한책임을 짊어진 그를 괴롭혔을 불면(不眠)의 밤도 이제는 차기 대통령의 것이다. 그는 “퇴임 후에 잊힌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진심이라면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닌 열망을 모두 내려놓고 정치와 무관한 범부(凡夫)의 일상으로 조속히 귀환하기 바란다. 곡절 많은 한국의 대통령제를 그나마 진일보시키는 길이다.

원문보기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68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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