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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칼럼-이하경 중앙일보 주필] 국민을 능멸한 3류 정치의 종착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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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520회 작성일 2022-01-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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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속았다. 그는 탄핵당한 전임자와 마찬가지로 불통이었다. 문재인을 선택함으로써 우리는 거대한 기회비용을 지불했다. 눈이 밝고 유능한 지도자가 5년을 책임졌다면 21세기의 큰 축복을 누렸을 것이다.

저 낡은 서가(書架) 한 구석에 꽂혀 있는 철 지난 운동권 서적의 박제된 이론, 생경해진 이념이 구중궁궐 제왕적 대통령의 정신세계를 지배했다. 현실의 엄중함을 망각한 지도자의 자폐적 세계관은 시대와의 불화를 의미한다. 경제력과 기술력, 국방력이 동시에 세계 10위 이내에 들고, K콘텐트가 세계를 흔들어 놓은 선진국임에도 이 나라는 비상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을 구실로 광장을 봉쇄하지 않았다면 민초들이 청와대를 향해 성난 함성을 토해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 불통·비현실…낙제
민심은 정권교체를 원하는데
사이비 보수·진보 새 가치 못 보여
한국 도약 직전에 추락할 것인가

오래 탄압을 받아서였을까. 정권을 잡았지만 여전히 “적에게 포위된 요새에 갇혀 있다”는 진보의 강박(強迫)은 사라지지 않았다. 화자(話者)가 내 편이 아니면  옳은 얘기에도 귀를 닫았다.  과거 정권 인사는 ‘적폐’로 내몰았다. 통합과 협치를 요구한 민심과 사사건건 충돌했다. 탈선한 소득주도 성장과 비현실적인 탈원전, 인간의 소유욕을 죄악시한 부동산 정책은 F학점이다. 북한과의 종전선언에 무리하게 올인했다. 중국에 기울고, 미국·일본과의 관계를 후퇴시킨 외교안보 정책도 실망스럽다. 임기말 알박기 보은 인사까지 했다. 꼭 그래야 했을까.

나치당원이었던 기민당 키징거가 나치에 저항했던 사민당 브란트에게 손을 내민 장면을 되돌아본다. 두 사람은 살아온 길도, 생각도 많이 달랐다. 하지만 1966년 독일 최초의 대연정으로 좌우 통합을 이뤘다. 총리와 부총리겸 외무 장관으로 호흡을 맞추면서 민주주의를 새로운 차원으로 성숙시켰다. 통합을 거부한 문재인 정권과는 달랐다.

그래서 다수는 정권교체로 민심이 천심(天心)이 되는 시대가 열리기를 열망했다. 그러나 기대했던 야당은 민심을 읽지 못했고,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진보정권의 시대착오를 바로잡는 보수만의 가치를 제시하지 못했다. 분단된 반공국가라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너 빨갱이야?”라는 한마디로 진보를 제압하고 권력을 유지했던 사이비 보수의 타성이 발목을 잡았다. 게으른 무임승차자(free rider)는 한 번쯤 죽었다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없다. ‘포위된 요새론’을 경전(經典) 삼아 목숨 걸고 싸우면서 자기 진영의 부조리와 악행에 눈감는 사이비 진보의 결기는 그만큼 강력하다.

유럽의 영혼을 움직인 독일 보수 정당의 선구적 변신을 우리는 기대할 수 없는 것일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사회적 시장경제’를 제시한 정당은 진보인 사민당이 아니라 보수인 기민당이었다. 초대 총리 아데나워와 경제장관 에르하르트가 결단했다. 자유주의적 시장경제를 기본으로 하되 진보의 핵심 가치인 사회연대와 통합을 접목시켰다. 빈부격차를 완화하기 위한 최소한의 국가개입과 조정을 허용한 것이다. 그러자 진보인 사민당도 노동자 계급의 정당에서 탈피해 사회적 시장경제를 수용했다. 이후 대부분의 유럽국가, 그리고 한국도 받아들였다(김황식 전 총리 『독일의 힘, 독일의 총리들1』).

불임(不妊)의 한국 보수 야당은 정권을 되찾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외부에서 급조된 인물을 찾아냈다. 무능한 집단의 비겁한 결정이었다. 보수가 선택한 윤석열은 어쨌든 조국 일가의 비리를 엄호하는 문재인 정권의 불공정에 맞섰고, 공정이라는 이 시대 최고의 상징자본을 획득한 인물이다. 독일 기민당처럼 중도와 진보의 일부까지도 끌어들여 통합을 선도하려는 시도도 했다.

그러나 야당 실세들은 중도와 진보를 파고들어 오세훈·박형준을 서울·부산시장으로 당선시킨 김종인을 내쳤다. 청년세대가 열광하는 당 대표 이준석을 탄핵시키려다 철회했다. 피비린내 나는 내부 권력투쟁의 결과였다. 윤석열은 ‘십상시(十常侍)’에 휘둘리고 있다는 청년보좌역의 비판을 감수해야 했다. 이제 중도 민심을 업은 안철수에게도 쫓기는 정치 초보 윤석열의 개인기에 야당의 운명이 달려 있다.

패색이 짙었던 집권당은 필사적인 노력으로 지지율 반등에 성공했다. 이재명은 문재인과 차별화를 시도하고 “단 한 사람의 유권자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포괄정당(catchall party)’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중산층과 보수 유권자를 잡기 위해 부동산 세금 유예와 외교안보 우클릭도 약속했다. 표가 되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했다가 뒤집기를 반복하고 있다. 포퓰리즘 교과서가 따로 없다. 과연 믿어도 되는 것일까.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정치 거인(巨人)이 사라졌고, 전환기 한국을 살릴 경세가(經世家)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전근대적인 제왕적 대통령을 모셔야 한다. 이대로 가면 한국은 더 분열하고, 도약 직전에 추락하는 비극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정치인들이 위험한 대권놀이의 유혹에 빠져 통합과 분권, 협치를 실현하는 권력구조 개편을 미룬 무책임의 결과다. 국민을 능멸한 3류 정치의 종착역이 안갯속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원문보기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39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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