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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칼럼-임성원 부산일보 논설실장] '지방혐오 보고서'가 나오는 세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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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992회 작성일 2021-09-03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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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까' '똥푸산' '붓싼' 등 부산을 조롱하고 비하하는 포털 댓글들이 사이버공간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부산 원도심 중구 일원. 김경현 기자 view@ 


‘스까’ ‘똥푸산’ ‘노인과 바다’를 아시나요. 선뜻 ‘노인과 바다’는 헤밍웨이의 그 유명한 작품 아니냐고 알은체하고 나서면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라는 핀잔을 듣기 십상이다. “부산엔 노인과 바다밖에 없다”는 뜻의 신조어란다. 부산이 9월부터 전국 7대 특별·광역시 가운데 처음으로 만 65세 이상 노인이 인구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다지만 이건 좀 심하다 싶다. 노인과 바다도 있는 도시가 부산 아닌가.


쉬운 문제부터 풀었으니 이제 ‘스까’ ‘똥푸산’을 들여다볼 차례다. ‘스까’는 “섞어 먹는다”라는 뜻으로 이것저것 음식을 한데 섞어 여러 사람이 나눠 먹는 부산의 식문화를 비하한 말이다. ‘섞어 먹다’의 사투리 ‘스까먹다’에 어원(?)을 둔 듯하다. ‘똥푸산’은 지저분한 식당과 공공시설물 등 ‘푸산’ 혹은 ‘붓싼’으로 불리는 부산의 낮은 위생개념을 한껏 조롱했다. ‘스까’ ‘똥푸산’ ‘노인과 바다’ 등의 신조어들은 부산은 ‘촌스럽고 더럽고 이상한 동네’라고 직격하고 있다.


‘스까’ ‘똥푸산’ ‘노인과 바다’ ‘붓싼’

포털 뉴스 댓글마다 지방혐오 기승

“수도권 아니면 시골” 인식 확산

멀고도 먼 자치분권·균형발전

혐오 딛고 지방소멸 막으려면

비수도권 민관 연대·협력 절실


부산·울산·경남의 예총과 민예총, 지역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7월 13일 부산시청 광장에서 문체부의 일방적인 '이건희 기증관' 입지 결정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정종회 기자 jjh@
 

‘말이 곧 사람(言卽人)’이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 했다. 무릇 말이란 게 새로 생겼다가 그 운명을 다한 뒤 스러지기도 한다지만 인터넷에서 독버섯처럼 돋아나 악성 바이러스같이 창궐하는 ‘지방혐오’의 말들은 인내의 한계를 넘어선다. 부산은 서울과 비교해 형편없는 ‘시골’이나 ‘촌’으로 전락했고 그 이름도 ‘붓싼’ ‘푸산’으로 일그러졌다. 조선 사람(조센징)을 조롱한 일본 제국주의를 연상시키는 이들 말은 ‘서울공화국’ 아래 살아가는 부산의 식민성을 떠올리게 한다.


〈부산일보〉가 창간 75주년을 맞아 부경대 지방분권발전연구소와 함께 진행하고 있는 기획물 ‘2021 지방혐오 리포트’는 만연한 지방혐오를 통해 지방소멸의 현주소를 고스란히 보여 준다. 2020년 7월 1일부터 올 6월 31일까지 1년간 국내 최대 포털 네이버 뉴스에 달린 댓글 280만 개를 놓고 빅데이터 분석을 한 결과 지방혐오는 융합하거나 분열하며 쉼 없이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게다가 코로나19는 지방혐오의 좋은 먹잇감이 됐다.


영호남을 비하하는 혐오의 말이 먼저 난무했다. 특히 ‘폭동’ ‘라도’ ‘홍어’ ‘시골’ ‘통수’ 등 광주와 전남을 조롱하는 말들이 가장 많았고, 경상도와 부산·대구를 비하하는 ‘쌍도’ ‘붓싼’ ‘과메기’ ‘노인과 바다’ ‘똥푸산’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수도권 일극주의가 강고해지면서 비수도권을 수도권에 편입되지 못한 열등한 존재로 여기는 댓글들이 사이버공간에서 활개 치는 형국이다. 작은 무질서가 더 크고 심각한 범죄를 야기할 수 있다는 ‘깨진 유리창 이론’에서 본다면 이는 지방소멸의 심각한 조짐이 아닐 수 없다.


댓글을 통해 지방의 고유한 전통과 문화가 공격받고 있다. 자부심을 느껴야 마땅할 지방의 정체성이 위기를 맞은 상황이다. 부산의 경우 사람과 문화가 뒤섞이는 ‘혼종성’, 집단적 신명의 ‘역동성’, 직선적이고 거친 ‘저항성’, 항구도시 특유의 ‘단발성’ 등 오랫동안 유지해 온 화통(化通)의 부산미가 있지만 이제는 왜곡되고 변형된 채 희화화될 판이다. 부산의 전통과 문화가 사라진다면 부산의 존재 자체가 아예 없어지는 셈이다.


‘2021 지방혐오 리포트’는 대한민국의 자치분권과 균형발전이 2021년 현재 어디쯤 있는지를 보여 주는 보고서다. 올해 지방자치 부활 30주년을 맞아 ‘자치분권 2.0시대’를 운위하지만 자치분권의 적들은 지방혐오의 이름으로 일상 속에 사방팔방 도사려 있음을 웅변한다. 문재인 정부가 겉으로는 자치분권과 균형발전을 외쳤지만 실속은 없었다는 게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특히 지방의 문화적 욕구를 외면한 것은 정부의 대표적인 실책이다. 부산시민 325명을 대상으로 ‘부산이 불편하거나 부끄럽다고 느낀 이유’를 물어보니 ‘문화적 수준이 떨어져서’(45.8%), ‘다른 지역 사람이 내가 사는 지역을 낮춰 보는 것 같아서’(27.1%), ‘경제적으로 낙후돼서’(16.7%)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부산을 비롯한 전국의 많은 지자체가 ‘이건희 기증관’ 유치에 나섰지만 정부가 그 흔하디흔한 공청회 한번 없이 일방적으로 서울을 후보지로 지정한 것은 ‘지방혐오 정책’이라는 말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민과 관을 떠나 지방끼리의 연대와 협력 없이는 지방소멸을 막을 길이 없다는 게 현실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비수도권 지자체와 시민사회가 똘똘 뭉쳐 중앙정부에 강력히 맞서야 한다. 서울로부터의 거리에 비례한 듯 지방혐오의 최일선에 내몰린 영호남의 연대는 더욱 시급하고 절실하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지망소멸을 막을 정치적 결사도 마다하지 않는 절박함이 지방에 요구된다. 지방이 스스로 제 살길을 찾아야 할 때다.



원문보기  http://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21090218484796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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