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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칼럼-백기철 한겨레 편집인] 제왕적 대통령제의 수명이 다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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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891회 작성일 2021-08-03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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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선은 관전자와 선수들의 눈높이 차가 유독 큰 선거판이다. 올림픽을 뛰는 선수나 이를 보는 국민 수준은 모두 선진국인데 우리 정치는 그렇지 못하다. 국민들은 백마 타고 오는 초인 같은 지도자는 이제 가능하지도, 필요하지도 않다는 걸 안다.

백기철 편집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대선 출마 선언 이후 상황은 이번 대선이 어느 때보다 유동적이라는 걸 보여줬다. 굳건할 것 같았던 윤석열 대세론이 흔들리면서 급기야 한달여 만에 독자 깃발을 접고 국민의힘에 투항했다. 더불어민주당 경선에선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대세론이 주춤하며 이낙연 전 대표에게 추격을 허했다.


윤석열-이재명 양강 구도의 균열로 요약되는 이런 흐름은 대선판을 보는 국민 시선이 어느 때보다 매섭기 때문이다. 후보들 일거수일투족이 검증대에 오르며 냉철한 평가를 받는데, 국민들 보기에 그다지 성에 차는 후보가 없는 것 같다.

특히 윤 전 총장의 약세는 우리 정치가 이제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는 ‘1인 정치’로는 어렵다는 걸 잘 보여준다. 살아 있는 권력에 맞서 인기 좀 얻었다고 나라를 혼자 이끌 수 있는 것처럼 하고, 주변 검사나 명문대 출신들에게 귀동냥한 걸로 나라의 백년대계를 쥐락펴락할 수 있다고 하는 건 시대 정서와 동떨어진다.

여권의 이재명 지사 역시 선명함과 기본소득으로 대세를 장악하는 듯했지만 기본소득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걸 국민들은 안다. 이 지사가 주변 문제에 말끔히 대처하지 못하면서 문제를 키운 측면도 있다.

이낙연 전 대표가 추격하는 모양새를 갖췄지만 현 정부의 공과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당대표 시절의 재보선 참패 책임을 안고 갈 수밖에 없다. 이 전 대표의 ‘대표 정책’이 뭔지 아는 국민은 별로 많지 않다.

한겨레 그래픽
한겨레 그래픽

여권의 지역감정 논쟁, 적통 논쟁은 달라진 유권자의 눈높이에서 더 멀어지는 역주행이다. 정책 경쟁 여건을 갖춘 이재명, 이낙연 두 후보가 밑도 끝도 없는 네거티브에 매달리는 건 제 살 깎아 먹기다. 네거티브를 먼저 중단하는 이가 승점을 챙길 것이다.

현 정권의 핵심 요직에 있던 세 사람이 야당 대선판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것도 저질 정치 코미디에 가깝다. 윤 전 총장에 이어 최재형 전 감사원장까지 정치 중립 의무를 팽개치고 진흙탕에 뛰어든 건 안쓰러울 정도다. 최 전 원장이 최저임금 문제를 범죄와 연결시킨 건 정책적 무능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또 무슨 깃발인지 알 수 없지만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까지 제3지대 운운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세 사람의 궤도 이탈은 결국 문재인 대통령 책임이 크다. 인사나 국정 운영이 매끄럽지 못해 벌어진 일이다. 그렇다고 당사자들이 ‘별의 순간’에 혹해 대선판에 뛰어든 게 합리화되지는 않는다.

이번 대선은 관전자와 선수들의 눈높이 차가 유독 큰 선거판이다. 도쿄 올림픽을 뛰는 선수나 이를 보는 국민 수준은 모두 선진국인데 우리 정치는 그렇지 못하다. 국민들은 백마 타고 오는 초인 같은 지도자는 이제 가능하지도, 필요하지도 않다는 걸 안다. 누구 한 사람으로 나랏일이 다 되지 않는다는 걸 1988년 이후 5년 단임 대통령 7명을 겪으며 충분히 알게 됐다.

문 대통령이 임기 말 40%대라는 역대급 지지율이라지만 ‘촛불 대통령’으로서 기대를 충족했다고 보기 어렵다. 야당 대표, 청와대 비서실장까지 지낸 그지만 부동산이나 최저임금, 외교 등을 말끔하게 해내진 못했다. 국정은 대통령 혼자로는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졌다. 세상은 급변하는데 몇십년째 대통령 1인에게 절대 의존하는 구조에 따른 필연적 결과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 제왕적 대통령, 5년 단임 대통령, 나홀로 대통령의 수명이 다해간다는 걸 국민들은 부지불식간에 알아가고 있다. 하지만 정치는 그 고리를 끊지 못한 채 쳇바퀴를 돈다. 그러니 국민들은 답답해하면서도 마지못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눈길을 줬다 거뒀다 한다.

지금 무슨 대망론이나 다크호스로 불리는 이들 중 누가 내년 3월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세상이 갑자기 변하진 않는다. 국민들은 지난 33년간 대통령들의 시작과 끝을 충분히 봐왔다. 모든 사람이 대통령 한 사람만 쳐다보며 환호하거나, 아니면 매일 저주를 퍼붓는 식은 이제 그만할 때도 됐다.

지도자의 책임과 권한을 나눠 갖고, 칭찬과 비판도 나눠 받는 정치로 가야 한다. 당장 어렵다면 차근차근 그 길을 닦아야 한다. 대통령, 총리를 포함해 여러 사람과 세력이 권력을 나누고 정책을 조율하고 연합함으로써, 선진국에 걸맞은 정치의 연속성과 변화를 꾀해야 한다. 현행 헌법 안에서 최대한 권력을 분담하고, 가능한 시기에 어떻게든 권력분산형 개헌을 해야 한다.

이번 대선의 선택 역시 차선이든, 차악이든, 차차악이든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벗어나는 길을 열어줄 이를 택해야 한다. 다음 대선도 이번 같아선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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