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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칼럼-백기철 한겨레 편집인] 부서져 열리는 정치

작성일 21-06-30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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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이 절망에서 일어나 긍정의 힘으로 부서져 열리는 일들이 모여 촛불이 되고 역사가 된다. 시민들이 함께 열린다면 못할 게 없다. 부서져 열리는 정치의 목표가 단순히 정권 재창출일 필요는 없다. 촛불혁명의 본모습, 위용을 되찾고 촛불의 새 단계를 개척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겐 또다른 ‘열림의 시간’이 필요하다.

백기철ㅣ편집인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1년 전 이맘때 세상을 뜨기 직전 읽었다는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을 최근 접했다. 박 전 시장은 당시 책에다 “두번째 읽은 이 책에서 소수자와 힘겨운 사람들을 위한 나의 투쟁을 다시 시작해야 함을 깨닫는다”고 적었다. 하지만 그런 다짐은 본인의 성희롱 사건에 묻혀 물거품이 됐다.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본격적인 정치의 계절이 시작됐지만 정권 재창출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탄식하는 사람이 주변에 많다. 박 전 시장 사후 1년여 정치 지형이 급변해 이제는 ‘촛불혁명’의 깃발을 드는 것조차 버거운 형국이다.

‘비통함의 정치학’은 사회나 개인의 비극 앞에서 시민들이 비통함, 절망으로 부서져 깨지는 게 아니라, 부서져 열림으로써 더 나은 대의, 더 나은 정치로 나아가는 과정을 말한다.

링컨, 로자 파크스, 마틴 루서 킹 같은 이들이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절망의 나락에서 세계를 향해 마음을 열어젖힘으로써 새로운 힘을 모은 사람들이다. 우리로 따지면 세월호 유가족, 고 김용균씨 어머니, 문익환, 전태일 같은 이들이다.

2016년 11월1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촛불을 치켜들며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외치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2016년 11월1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촛불을 치켜들며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외치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위인이나 영웅들만 그런 건 아니다. 일상생활이나 사건들 속에서 시민들이 절망에서 일어나 긍정의 힘으로 부서져 열리는 일들이 모여 촛불이 되고 역사가 된다.


어쩌면 이준석을 당대표로 만든 국민의힘 당원과 지지자들, 이준석을 밀어올린 청년들 역시 극도의 어려움 속에서 그런 결단을 했는지도 모른다.


‘비통함의 정치학’을 사회 진보의 주요 동력으로 여겨온 민주개혁 진영은 상대적으로 위축돼 있다. 절망과 고통에서 떨쳐 일어났던 촛불의 순간은 먼 일이 됐다. 촛불을 들었던 이들은 나뉘어 흩어졌다. 정권교체 10년 주기설, 진보 집권 20년 시대 등 희망의 언어가 있었지만 언젠가부터 역량 부족이 드러났고, 기득권에 연연하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담을 쌓고 다른 사람, 다른 세대를 탓하며 ‘분열의 강’을 깊게 팠다.


1987년 6월항쟁도 부서져 열린 역사에 해당한다. 하지만 그해 말 치러진 대선은 양김 분열로 6월항쟁의 성과를 송두리째 날려버렸다. 직선제를 쟁취해놓고서 적전 분열로 눈앞에서 권력을 놓쳤다. 지금 상황 역시 촛불혁명의 성과가 5년여 만에 없던 일이 될 수 있는 위태로운 형국이다.


87년 양김 분열은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단순하면서도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민주개혁 진영은 지금 87년 대선의 교훈을 잊고 있다. 누구든 대선이 어렵다면서도 스스로를 돌아보기보다 남 탓하기 바쁘다. 사과를 여러번 했으니 진심으로 반성한 것으로 알아 달라지만 정작 상대방은 그 사과를 받아들인 적이 없다. 세대, 인물, 정책으로 쩍쩍 갈리는데 나만 옳고 나, 우리를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야 한다고 하면 꼭 87년 대선 꼴이 나는 것이다.


정치 공학은 정치인의 일이다. 부서져 열리는 정치는 시민의 일이다. 시민들이 함께 열린다면 못할 게 없다. 깨어 있는 정치인이 나서 기폭제가 된다면 금상첨화다.


부서져 열린 사람에겐 힘이 있다. 삶에서 고통과 절망이 없다면 그렇게 하기 어렵다. 끝 모를 절망 속에서 온 힘으로 소신과 원칙을 세워야 가능한 일이다. 이런 사람만이 온전히 자신의 삶에 근거해 세상과 정치를 말할 수 있다. 노무현이 대표적이다.


반면 외관상 그럴듯해 보이지만 정작 공동체의 고통과 절망에 함께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괜찮고 유력해 보이지만 결국 힘을 받지 못하는 건 삶의 밑바닥에서 온몸으로 고통과 절망을 겪지 않고 편하게, 기득권을 누리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한때 대세였다가 주저앉은 대선 주자들 상당수가 이 부류다. 9개월 남은 이번 대선판에서도 이런 일은 반복될 것이다.


부서져 열리는 정치의 목표가 단순히 정권 재창출일 필요는 없다. 촛불혁명의 본모습, 위용을 되찾고 촛불의 새 단계를 개척해야 한다. 설사 정권을 내놓는다 해도 민주개혁 세력의 참모습을 청년과 시민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정권 재창출에 골몰할수록 더 어려워질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새로운 대의를 세울 수 있다면 노무현이 말한 ‘원칙 있는 패배’에 가까울 수 있다.


1년 전 박원순의 깨달음과 그의 성희롱 사건이 겹쳐 일어난 건 민주개혁 진영이 처한 딜레마적 혼돈을 잘 보여준다. 박원순은 어쩌면 촛불혁명의 새로운 분발, 다시 부서져 열리는 촛불을 꿈꿨는지 모른다. 그 깨달음이 생에서 불거진 마지막 사건으로 크게 빛바랬지만 우리에겐 분명 또다른 ‘열림의 시간’이 필요하다.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01194.html#csidxb00a5698e386d6f8e9b960ef3997507 onebyone.gif?action_id=b00a5698e386d6f8e9b960ef3997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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