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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칼럼-백기철 한겨레 편집인] ‘8090 정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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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812회 작성일 2021-06-10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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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90 정치의 쓰나미 앞에서 ‘장유유서’, ‘구상유취’의 꼰대 정치는 설 자리가 없다. 보수에서 지각변동이 일어난 건 그만큼 절실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진보 쪽이 더 절실해 보인다. 조국 사태건 뭐건 과거에 매달릴 겨를이 없다.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가 지난 4일 대전에서 열린 충청권 합동연설회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가 지난 4일 대전에서 열린 충청권 합동연설회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백기철ㅣ편집인

열흘 전쯤 카톡방에서 친구들과 국민의힘 대표 경선을 두고 내기를 했다. 10명 중 8명이 이준석 후보 당선에, 나를 포함한 2명이 낙선에 걸었다. 이 후보를 뺀 중진들 표의 합이 훨씬 많고, 새파란 30대에게 내년 지방선거 공천권을 줄 것 같지 않았다. 현재로선 11일 전당대회에서 기자의 올드한 ‘촉’은 빗나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만약 이 후보가 승리한다면 한국 정치의 일대 사건이 될 것이다. 국민의힘 당원과 지지자들은 내심 ‘사고 한번 치기로’ 작정한 듯하다. 이 후보의 당선은 우리 정치의 역동성을 또 한번 보여주는 것이고, 패배해도 정치권 지각변동의 기폭제가 될 것이다.

이준석 돌풍은 이른바 ‘80 정치’의 본격 부상을 의미한다. 1985년생 이준석의 등장은 30대와 20대, 즉 80, 90년대생을 중심으로 한 세대교체, 세대극복론이 구호가 아니라 현실임을 보여준다. 올해 초 <추월의 시대> 30대 저자들이 설파한 ‘8090의 정치’가 보수 쪽에서 급류를 타는 형국이다.

1980년대생들은 산업화와 민주화의 수혜를 모두 받고 자란 첫 세대이고, 개발도상국에서 태어나 선진국에 진입했음을 명확히 인식한 마지막 세대다. 앞선 두 세대의 역할을 모두 긍정한다는 점에서 중도적이지만, 두 세대가 적대적 공생으로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데 비판적이란 점에선 전복적이다.

이준석이 2년 전 <공정한 경쟁>에서 “젊은 세대가 산업화와 민주화 세대의 엉덩이 밑에 깔린 존재가 아닌 독립적 어젠다로 움직여야 한다”고 한 건 상징적이다.
20대의 세대 비판은 주로 ‘86’에 집중된다. <케이(K)를 생각한다>에서 1994년생 임명묵은 86세대를 거의 ‘괴물’로 그렸다. 머릿속엔 좌익 민족해방론과 진보적 자유주의 사이에서 이중사고를 하고, 현실에선 비주류를 자처하면서 실제로는 상류 중산층의 모든 혜택을 누리는 이중생활을 한다. 조국 사태는 드라마보다 극적으로 이를 보여줬다는 것이다. 86세대의 이념 좌표를 근거없이 재단하고, 정치권 86과 전체 86을 동일시하는 등의 문제가 있지만 20대 눈에 비친 86의 모습은 충격적이다.

이준석의 ‘80 정치’는 ‘나쁜 정치’의 징후가 많다. 현실 정치의 성과보다는 방송을 통한 이미지 쌓기, 젠더 갈등을 이용한 편가르기 등으로 떴다는 점에서 한계도 분명하다.

무엇보다 “2030 여성 차별은 없다”며 2030 남성의 반페미니즘 정서를 자극한 건 그에겐 양날의 칼이다. 박원순·오거돈의 권력형 성폭력, 최근 공군 중사 자살 사건에서 보듯 여성은 여전히 남성에게 광범위하게 비인격적 대우를 받고 있고 범죄 대상까지 되고 있다. 20대 여성의 소득이 같은 조건 20대 남성의 80%에 그친다는 통계도 있다.

격차사회의 바닥에서 신음하는 이들이 청년이다. 젊은 남성이 유례없는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젊은 여성은 또다른 차별에 노출되며 이중의 고통을 겪는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미투혁명’의 긴 터널을 통과하고 있다. 청년 전반의 어려움을 직시해야지 갈라치기로 득을 보려 해선 안 된다. 젊은 여성의 중첩된 고통을 철저히 외면한다는 점에서 이준석의 정치는 반정치적이다.

이준석의 공정 역시 논란거리다. 반칙과 편법을 해결한다며 실력대로, 시험으로 뽑자는 실력주의, 능력주의를 내세우는데 청년 전반의 이해를 대변한다고 보기 어렵다. 실력, 학벌, 지위는 자신의 능력보다는 상당 부분 계층 세습, 부의 대물림 덕이다. 출발 자체가 다른데 실력대로 뽑자는 건 상위 엘리트 청년의 공정에 가깝다.

북한은 단지 흡수통일 대상일 뿐이라는 대북관 역시 생경하다. 남쪽은 통일교육도 필요 없고 북쪽 주민만 통일교육 하면 된다는데, 평화가 아니라 대결의 논리다. 평화를 바라는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준석은 ‘박근혜 키즈’로서 ‘탄핵의 강’을 건넜고, 꼰대 문화에 젖은 보수 야당에 새바람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강력하다. 이준석은 ‘생존 인물 가운데 정신적 스승’으로 김종인을 꼽았는데, 그가 ‘김종인·유승민 키즈’라는 게 지금 국민의힘에선 약점으로 보이지 않는다. ‘윤석열+이준석’ 조합은 내년 대선에서 국민의힘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카드다.

8090 정치의 쓰나미 앞에서 ‘장유유서’, ‘구상유취’의 꼰대 정치는 설 자리가 없다. 보수에서 지각변동이 일어난 건 그만큼 절실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진보 쪽이 더 절실해 보인다. 조국 사태건 뭐건 과거에 매달릴 겨를이 없다. 보수의 8090 정치와 함께 한국 정치의 역동성을 더할 진보의 8090 정치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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