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5호] 디지털 시대 뉴스룸에서의 단상( 이홍렬 YTN 총괄상무/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
작성일 16-12-20 13:27
페이지 정보
조회 1,155회 댓글 0건본문
385호
디지털 시대 뉴스룸에서의 단상
이 홍 렬 YTN 총괄상무/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요즘 같이 추운 날이면 찾아 듣는 음악이 있다. ‘슈만의 교향곡 4번’이 그것이다. 슈만이 아내 클라라에게 바친 사랑의 선물인 이 곡에는 슈만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방황, 희망, 투쟁, 환희…. 이 교향곡은 찬 겨울바람에 지친 영혼을 언제나 위로해 주는 따뜻한 곡이다. 나는 슈만의 교향곡 4번 중에서도 2악장 ‘로만체’를 특히 좋아한다. 슈만이 클라라에게 소곤소곤 속삭이는 것 같은 느낌의 바이올린 독주는 물론이고, 애수에 젖은 첼로와 오보에(Oboe)의 이중주는 언제 들어도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 준다.
100여 명에 이르는 연주자가 저마다의 악기를 가지고 동시에 연주하면서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내는 것이 오케스트라의 매력이다. 그 가운데 오보에는 별로 두드러지는 악기는 아니다. 제1, 제2 바이올린으로 나뉘어 수십 명이나 되는 바이올린 연주자처럼 무대 앞을 차지하지도 않고 단지 1~2명의 연주자가 오케스트라 중간에 파묻힌 듯 자리 잡고 있을 뿐이다.
오보에라는 악기가 낯선 분들은 영화 <미션>에서 제레미 아이언스가 가브리엘 신부 역으로 나와 연주하던 그 악기를 떠올리면 될 것 같다. 이과수 폭포를 배경으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던 그 곡 Gabriel’s Oboe말이다. 뒷날 사라 브라이트만(Sarah Brightman)이 ‘넬라 판타지아(Nella Fantasia)’라는 곡으로 불러 유명세가 더해진 그 곡의 원래 연주 악기가 오보에다.
오보에는 이처럼 독특하고 따뜻한 음색 때문에 애수에 젖은 분위기, 목가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자 할 때 주로 사용된다. 그렇지만 오보에의 진가는 따로 있다. 100명이 넘는 오케스트라의 중심을 잡아주는 악기가 바로 오보에다. 본격적인 연주가 시작되기 전 단원들이 제각각 소리를 내며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오보에의 A음(라)이 들려오면 장내는 조용해진다.
바로 오보에가 내는 440Hz(헤르츠)의 A4음이다(지휘자에 따라서는 441이나 442Hz를 선호한다는데 절대음감이 없는 나로서는 잘 구분이 되지 않는다). 오보에의 소리에 맞춰 목관악기, 금관악기, 현악기 순으로 음정을 맞춘다. 이런 과정을 튜닝이라고 하는데 오보에는 오케스트라라는 거대한 조직의 음정을 맞추는 기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오보에는 다른 악기들처럼 화려한 악기도 아니고, 수십 억 원씩 하는 비싼 악기도 아니다. 그러나 오보에에 맞춰 튜닝을 하는 순간은 오케스트라의 최고 어른인 악장도 가만히 있어야 한다. 오보에의 A4음에 따라 자신도 바이올린의 음정을 맞출 뿐이다. 이런 과정을 거친 뒤에야 지휘자가 무대에 등장한다. 오보에가 기준이 되어 악기의 조율이 이뤄지지 않으면 제 아무리 뛰어난 세계적인 명지휘자라도 오케스트라의 멋진 화음을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이다.
오케스트라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우리 사회다. 물론 개개인, 각 집단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뛰어난 역량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혹자는 세상을 호령할 기개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 혹자는 막강한 영향력으로 우리 사회를 좌지우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들이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저마다 자기 생각이나 주장이 옳다고 고집하는 데 문제가 있다. 자신의 이해관계만 중요하고 자신의 정치노선만 옳다고 내세우면서 말이다. 이런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개인과 집단을 하나로 묶어서 조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오보에와 같이 기준 음을 잡아 줄 존재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의 지휘자도 중요하고, 악장과 같은 어른도 필요하지만 오보에처럼 모든 악기의 중심을 잡아 주는 역할 말이다.
이 사회, 이 시대 대한민국이라는 오케스트라의 기준 음을 잡아 주는 오보이스트의 역할은 언론이 해야 할 것이다. 나라가 암흑에 휩싸인 것처럼 온통어지러운 혼용무도(昏庸無道)의 시대에 우리 언론이 오보에의 A음처럼 다른 악기의 소리를 꿰뚫고 나가는 분명한 소리를 내야 대한민국이라는 우리 사회는 멋진 화음을 만들어낼 수 있다. 유난히 찬바람이 부는 오늘, 오보에와 같은 언론을 꿈꾸며 슈만의 교향곡 4번으로 위로를 받고 싶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